사람들의 이야기

'노무현입니다' 이창재 감독 "난 친노도 노빠도 아니었다"

동자승12 2017. 5. 29. 06:53

"노 전 대통령이 우리를 외롭지 않게 만든다고 느껴"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개봉 3일만에 누적관객 38만 6467명을 넘어섰다. 다큐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이창재(50)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흥행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영화 중 관객을 가장 많이 모았던 것은 2013년에 개봉한 '길 위에서'로 누적관객수 5만 3507명이었다. '노무현입니다'의 목표 관람객수도 10만~20만명이었다. 28일 오후,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예상치 못한 성적표에 얼떨떨하다"는 이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이창재 감독. 사진 라희찬(STUDIO 706)

 

Q : 영화 개봉까지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A : 2014년에 처음 기획했다. 4년 동안 묵힌 셈이다. 지난해 4·13일 총선에서 당시 야당이 승리하는 걸 보고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아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갔다. 내가 워낙 '모범생'인지라 영화를 준비하며 국가정보원에 다니는 친구와 상담했다. 4년 전 처음 준비할 때는 '학교를 나가게 될 것(이 감독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이라 했고, 지난해에는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지만, 밖으로 알려지면 영화 개봉 전에 중단하게 될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기관투자는 아예 생각도 안했다.


Q : 투자를 받기도 어려웠겠다

A : 정치적 외압을 느끼며 만들었지만 막상 제작을 시작하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지 열흘도 안돼 '투자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4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때 술자리에서 잠깐 만났던 분인데 '국면이 좀 바뀌었는데 다시 영화 준비할 생각 없느냐'고 먼저 연락을 준거다.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 때 투자 권유전화가 먼저 오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PD님의 고등학교 동창, 지인이 아는 기업체 중역 등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이 투자를 했다.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했던 분들이다. 혹시 피해를 입을지 모르니 본인 대신 부인이나 지인 이름으로 투자하더라. 세상이 좀 우습기도 하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도 아니고…


Q : 27일 하루에만 20만명이 보고 갔다. 흥행에 성공한 소감이 어떤가
A : 영화를 만들 때는 개봉 자체가 불투명했다. 앞서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멀티플렉스에 건 것도 처음이다. 지난해 4월 13일에 '8주기 때는 노 전 대통령을 외롭게 두지 말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흥행하는 걸 보니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이 영화 만든 우리를 외롭지 않게 하는구나 싶다. 숨어있던 관객들, 노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국민이 영화관에 나오는 걸 보면서 '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Q : 노 전 대통령 생전에 친분이 있었나? 

A : 아니다. 나는 '친노'도 '노빠'도 아니었다. 2001년에 유학 마치고 귀국했는데, 그때는 이미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지'라고 얘기하고 다녔고. 지금도 노 전 대통령은 공이 많지만 과도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노무현은 모방의 대상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는 다르다. 이 영화가 정치적 과오 때문에 생긴 인간 노무현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Q : '인간 노무현'에게 어떤 매력을 느낀 건가

A : 남다른 온기가 있는 분이다. 적도 적으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대했다. 적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넘어 '함께할 수도 있다'고 보는 사람이었다. 인권변호사 시절 자신을 감시하던 국가안전기획부 이화춘 요원과 친구가 된 게 대표적이다.


이화춘씨는 한때 생활고를 겪던 노 전 대통령에게 당신 월급을 격월로 갖다주기까지 했다. 영화 개봉 후 안희정 충남지사가 맥주를 마시면서 '이화춘씨를 그냥 노무현 친구 정도로만 알고 지냈는데, 영화를 보고서야 사찰하는 안기부 사람이었구나 알았다.


그 정도까지 하실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 정치와 매치가 잘 안될 정도로 사람에 대한 온기가 있던 사람이다. 그런 온기가 없던 게 바로 앞 시절(박근혜 정부 시절) 아니었을까. 정략적인 판단을 앞세우고 국민을 소외시키다보니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느꼈던 온기를 고향을 그리워하듯 붙잡고 산거다.


영화를 통해 그 온기가 팍 터지니 다들 모여드는거 같다. 일종의 '판타지'다. 실제로 그는 사라졌는데. 이창재 감독에게 '노무현입니다'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안녕, 노무현' 같은 것이다"고 했다. "이제는 노무현의 정신만 남기고 고인을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닐까"라면서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 「 ‘노무현입니다’를 보러 영화관에 다녀온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말했다. 27일 영화를 본 이모(62)씨는 “문 대통령 지지자는 아니지만 대통령이 되는 걸 보니 노 전 대통령 생각이 나더라”고 말했다.


그는 “아웃사이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소외감 느끼는 많은 국민이 자기가 대통령이 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내 마음에 미안함을 남긴 사람”이라고 했다. 김모(37)씨는 “9년간의 보수 정권이 끝나고 진보 집권에 대한 기대감 반, 노무현의 과거를 보면 문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반으로 영화를 봤다”고 말했다.


종종 봉하마을에도 다녀온다는 정모(28ㆍ여)씨는 영화 포스터를 본 후로 개봉일만 기다렸다. 그는 “역사가 그를 재평가해준다는 느낌에 울컥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문재인 정부가 더 잘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