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이야기

김종섭 선생님(합덕 어딘가에 계실) 연락 주세요

동자승12 2018. 9. 13. 10:56

  

이 편지는 시인 이정숙님께서 오랜 친구를 회상하는 편지 입니다

 

선생님!꽃이 바람에 지는 건 의로운 일인가요 아무 말 없이 달빛이 고요히 호숫가를 거니는 것도 의로운 일

이던가요

바람의 말처럼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 아직도 너울지는데 어디에서 우리는 만날 수 있는건지요


생각 나시나요

처음 간월도 횟집에서 비릿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회를 안주 삼아 시의 예기를 나누시던그 선선한 모습이

짭쪼름이 제 눈가에 맺혀 옵니다


인연의시작이 글이었 듯이 선생님께서는 저의 졸품을 가지러 오신다며 떠나가셨고 얼마 후간월도를 다시

찾아 오셔서 연호 문학에 입성을 시키셨지요생살을 찧는 아픔으로 낯선 곳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시작 된 문학 활동은 겨울나무에 포근히 내려 앉는 함박눈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계신 그 곳엔 환한 전깃불도 키셨는지요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열정은 선생님의 참 모습이셨습니

이제서야 뒤 늦은 감사를 전하게 되어 그저 죄스러울 뿐 저 혼자 얼굴을 붉히옵니다


우리 생의 시작과 끝은 똑같은 거라고 위안을 삼으며 하늘만 올려다 봅니다전 여전히 여행 중이 옵니다

무엇을 찾으려는 뚜렷한 목표가 이제서야 찾아졌으니 머지 않아 이 여행도한 곳에 뿌리를 내리며 막을 내

리게 되겠지요


선생님이 아니셨으면 제가 어찌 문학이라는 동네에 얼음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겠는지요여전히 따듯한 동

네 순순한 마음으로 모인 그 동네엔 언제나 시를 향한 열정으로 모이기를 반복 합니다


저 홀로 멀리 떠나 와 몇 년 간 게으름을 부리다보니 옥화씨의 따듯한 전화 목소리로 가슴 깊은 언저리 묵

은 때를 이제서야 벗기 옵니다


선생님!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실제 어찌 목 놓아 떠나 가셨는지요 지독한 여름에 힘겨웠던 더위도 절기 앞

에 고개 숙이고 어느 새 구월 입니다산 목숨은 살아 있어 견딘다지만 그 곳엔 젖과 꿀이 흐르는 평안만이

있기를 기원 합니다


아프지 마셔요 생의 부러졌던 몹쓸 순간들은 이 곳에 남았으니 미소로 불 밝히시고 날마다 시나 쓰시지요

선생님의 글은 바람의 말로 전해 오실건가요 그 곳에만 있을 달빛 수신기로 우리가 모이는 날 기별을 주실

건가요

오셔요 언제든지 오셔요 살금살금 다가 와 안경 너머로 만지시고 들으시고 가셔요

눈감으면 보이는 인자하신 모습이 생생히 느껴 집니다

밭은 이제 그만 가시고 쪽파도 그만 심으시고 꽃이나 보셔요


둥둥 떠다니는 꽃송이들에 파묻혀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언제나 봄인 채로 남은 생을 마저 사시지요


저마다 짊어진 삶 속에서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긴다는게 큰 복이라는 걸 감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잠시 짬을 내어 편지를 쓰는 내내 먹먹하면서도 행복했습니다


다시 간월도의 바닷물이 밀려 듭니다과거는 금 새 흘러 가버렸지만 흘러가지 않고 고여 있는 고마운 시간

과 사람들은 별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의 별이 되시어 머물러 주실건가요 만남은 이별이 된다

지만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이어 줍니다


이 편지는 우리들의 편지가 되어 둥둥 떠다니다

선생님 곁으로 돌아 갈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이만 작별을

고하렵니다

선생님 행복하셔요

201891 이정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