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헐버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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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쓰기도없고쉼표도없고 마침표도없는글을읽는것은 매우불편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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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위에 글처럼 불편하고 답답한 문장을 읽고 쓰면서 지내고 있을지도 혹시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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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7월 23세의 청년이었던 호머 헐버트는, 조선의 청년들에게 서양문화와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조선 정부의 요청을 받고 제물포를 통해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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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선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호머 헐버트는 조선인보다도 조선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조선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선비와 백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의 '사민필지'를 편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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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순 한글로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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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의 한글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어느 순간 미국인 선교사가 아닌 한글학자가 된 그는 미국에 한글 교본을 출간하는 등 다수의 논문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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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주시경 등과 함께 독립신문을 만들었는데 이 신문은 한글에 최초로 띄어쓰기를 실천한 한글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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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헐버트 박사는 주시경 선생 등과 함께 한글을 연구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연구하고 발표했던 한글의 띄어쓰기를 이 신문에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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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한글의 뛰어남을 잘 알았던 호머 헐버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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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익히기 어려운 한자를 그만 버리고 한글을 채택해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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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후 195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을 그리고 2014년 한글날에는 대한민국 금관 문화 훈장까지 추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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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박사는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했던 유언대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잠들어 계십니다. 1999년 50주기에 세워진 기념석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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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빅토리아 풍의 신사 헐버트 박사 이곳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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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으로만 전하는 아리랑을 최초로 악보로 정리했으며 미국 대통령에게 고종황제의 밀서를 전하려 시도하고, 헤이그 특사 파견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시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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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헐버트 박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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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이다. – 펄 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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