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지극한 북극전 - 통도사 비로암을 찾아
통도사는 산내 암자만도 열 아홉이라 했다. 그 중 비로암은 어떤 곳일까?
비로자나 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며 비로암을 찾았다.
극락암에서 약 500미터 지점이라는데 차로 이동하니 오 분도 채 소요되지 않는 거리이다.
-조용 조용히, 사뿐 사뿐히-
이곳이 수행정진 도량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우리를 맞는다.
-비로암 여시문
如是門 돌계단을 올라 ‘이러하고 이러한' 속으로 빨려들 듯 들어가는 일행을 따라 일주문을 겸한 천왕문을 넘는다.
조용 조용히...라는 안내문이 없더라도 정숙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뭇잎에도 자갈돌 위에도 오후의 햇살이 반쯤 걸려있다.
혼자서 너무 무료했던지, 조붓한 길 담장 아래 점박이 고양이 한 마리가 달콤한 오수에 젖어있다.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을 만치 깊은 잠에 들어 있다.
-분명 양달에서 잠이 들었을텐데 그늘로 바뀐지도 모르고 잠들어 있다.
-비로전에서 내려다 본 불이문
-비로암의 주전각인 비로전, 비로암이란 현판이 붙어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자 그림처럼 예쁜 문이 또 하나 놓여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단청빛이 고운 비로전이 우리를 맞는다. 비로암의 주전각이다.
활짝 열린 어간으로 잘 생기신 부처님 상호가 언뜻 비친다.
삼배를 올린 뒤 올려다 본 부처님은 역시 비로자나 부처님이셨다.
묵직한 색감의 수미단에 비해 법당 천장은 참으로 화려하게 장엄되어 있다.
새로 지은 전각인가 보다. 마루며 처마 색이 산뜻하다.
-비로자나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이 따로 봉안되어 있다.
-비로전 마루
반짝이는 것은 다 아름답다더니 이렇게 반들거리는 마루가 또 있을까?
티끌 하나 내려앉지 않은 말끔한 마루 위에 오후의 햇살이 따끈하게 든다.
하얗게 쓸려진 뜰 위에도 온통 빛이다.
섬돌 위에 놓여 진 어느 정갈하신 님의 고무신이 하얗다 못해 눈이 다 부시다.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쳐다보이는 처마 끝, 거기 당연히 매달린 물고기 한 마리, 쉬지 않고 염불이라도 외는지, 뾰족 내민 주둥이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시월 중순의 산사, 도량을 둘러싼 나무들에 단풍 물이 들고 있다.
그네들도 좀 더 고운 빛깔로 도량을 장엄하고 싶었던지 어느새 단청색을 닮아 있다.
이 높은 뜨락에 이렇게 서 있어도 되는 건가? 생각이 거기에 미쳐 얼른 한걸음 내려선다.
-북극전이라는 현판이 붙은 삼성각
오른편 위로 낯선 현판의 전각이 보인다.
속으로 지극전인가 했더니 함께 한 분이 북극전이라고 설명해 준다.
이런~ 그제서야 칠성전이란 생각이 드니....^^*
비로암에는 비로전과 북극전 외에도 몇 채의 전각이 마당을 중심으로 아담하니 들어서 있다. 언뜻 보기에 비구니도량인가 싶게 정갈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그것과는 또 달랐다.
-디딤돌 하나도 그냥 놓이지는 않았다.
팔정도를 연상시키는 팔각의 돌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놓여져있다.
비로암에는 특이하게도 주전각 바로 아래에 작은 영지가 있다.
여시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던 고요는 이곳에서 정점을 이룬다.
명경지수라더니 과연 그렇다.
물속에는 분명 잉어가 노니는데, 수면은 거울처럼 투명하고 잔잔했다.
작은 일렁임 하나 없는 수면 위로,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또렷이 비로전도 북극전도 영지 속에 자리한다.
제법 여러 곳의 사찰을 다녔지만 이렇게 고요한 곳은 또 처음이다.
‘아, 참 좋다!!’
혼자 보기 아까워, 매일 이 풍경을 보고 또 봤을 비로암의 신도님을 불러 세워 저것 좀 보라고 했더니 웃으며 봐 주신다. ^^*
-영지에 담긴 비로전과 탑
-수면 가까이로 떠오른 비단잉어, 그러나 수면은 거울표면처럼 고요했다.
물에 비친 풍경은 북극전과 석등
-절 쪽에서 내다본 여시문
아쉬운 걸음으로 돌아 나오는 길, 담장 아래에 아까 깨워둔 그 녀석이 아직도 자고 있다.
잠을 잘 거면 한쪽 구석에서 자도 될 텐데 녀석은 누구를 기다리는지 문 앞에서 그러고 있다.
자는 점박이를 안아 깨웠더니 옹그린 모습과는 달리 상당한 미묘美猫이다.
‘그래, 너도 절고양이구나 (부럽다^^*), 잘 지키고 있어’
극락암에서도 그렇더니 황송하게시리 이곳에서도 양이의 배웅을 다 받는구나.
-일주문까지 배웅해주는 超美猫 양이씨
작정한 마음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들렀던 비로암,
돌아갈 때는 그게 아니다.
‘좋구나....참 좋구나......’
고요에 끌려 멀지 않아 다시 찾게 될, 또 한 곳의 도량이다.
-비로전 뜰에서 내려다 본 영지
-절집은 원래 이렇게 멋있는 건지? 세숫대야 받침대가 예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