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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총림 통도사(1)

동자승12 2016. 2. 4. 18:02

 

 

 

 

 

 

 

 

 

 

통도사 암자순례길....*

[2014.06.29]

 

 

 

길이 있다.

참 많은 길들이 있다.

 

길을 걷는 자는

생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자다.

스스로 그려 나가는 ....길을

걸었다.

 

 

*****

 

 

통도사 18암자길을 계획하고 

어쩌면 이렇게 적절한 시기에 이 길이

나에게 열렸을까... 하는 설레임과 신기함

 

작은 씨앗처럼 싹튼 佛者의 알음알이는

수없이 작은 구멍으로 삐그덕 대던 나의 삶을

조율이 되어가는 악기로 만들어 주고 있다.

 

오늘은 어떤 악보가 그려질까....*

 

 *****

 

걸어간길 : 지산마을~ 축서암~ 비로암~ 극락암~ 반야암~ 금수암~ 서축암~

자장암~ 사명암~ 백련암~ 옥련암~ 장경각~ 서운암~ 수도암~ 안양암~

사자목오층탑~ 취운암~ 보타암~ 통도사~ 무풍한솔길

 

 

 

 

 

암자를 순례한다는 경건함을 이어주던 고운 숲길

그 길을 되새기며 지도를 그려본다.

 

 

 

 

좋은 일을 앞두고 몸을 조심 했어야 했는데, 어제 작은 사고가 있어 몸을 상했다.

그나마 운신 할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하며 순례가 끝날 때 까지 제발 버텨주기를....*

 

*****

 

지산마을에서 축서암으로가는 도중에 만난 우단담배풀

오늘 길에 처음 만난 꽃이다. 하지만 오늘은 꽃보다 암자!

 

 

 

 

 

 

 

아직 아침기운이 남은 시간의 솔향기는 그윽하기 그지없다.

영축산봉우리와 그대로 그림이 되어 버리는 솔숲

 

 

 

 

 

 

절 입구에서 만난 올챙이고랭이,

따로 수반에 골풀을 기르는 연유가 있는 것일까?

농부님들에게는 천하에 골치 아픈 끈질긴 잡초지만

ㅎ 내 보기에 쫌은 귀엽다.

 

▼ 올챙이고랭이   

 

 

 

◎ 鷲捿

 

말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듯한 축서암

맞배형 지붕의 군더더기 없는 단정함이 소나무와 잘 어울린다.

 

 

축서암의 주련에 쓰인 글귀는

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무여불 

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역무비

世間所有我盡見 세간소유아진견

一切無有如佛者  일체무유여불자

<천상천하 어느누가 부처님과 견주리오/시방세계 둘러봐도 비길자가 전혀없고

이세상의 모든것을 남김없이 살펴봐도/부처님을 따를자가 천지간에 하나없네.>

 

백중49일천도재(우란분절)기도 중이시라 공양물만 올리고 멀리서 반배의 예를 올린다.

백중(음력 7월 15일)은 불교의 5대 명절이자 인연을 맺었던 종친, 부모, 형제 영가 등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천도하는 날이다.

 

 

 

 

푸른 잎사귀로 인해 더 붉은 석류꽃이 더위의 포문을 연다.

 

 

 

축서암에서 비로암을 잇는 고운 숲길

햇볕이 파고 들지 못하는 숲길은 오솔길처럼 순하다.

 

 

 

◎ 비로암

 

숲길을 벗어나

사천왕상이 탱화로 그려진 여시문(如是문)을 지나

비로암에 들어선다.

 

 

 

수국의 계절..

 

초파일 즈음에 피는 불두화가 겹쳐진다.

 

출가하여 자손을 잇지 않으시는 스님의 삶과

무성화로 향도 꿀도 갖지 않아 고요한 아름다움을 가진 이 꽃

 

이즈음의 사찰에서 많이 만나지는 수국이다.

 

 

 

 

비로전(毘盧殿)의 주불이신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석가의 진신(眞身)을 높여 부르는 칭호로서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노자나불(盧遮那佛),자나불(遮那佛)이라고도 한다.

수인(손모양)은 부처와 중생이 일체라는 뜻의 지권인[智拳印]으로

두 손으로 각각 금강권을 만들고, 왼손의 집게 손가락을 펴서 바른 주먹 속에 넣고,

바른손의 엄지 손가락과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마주대는 수인(手印)이다.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과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뜻..

 

자세히 보면 불상마다 손모양이 다름을 알 수 있고,

알고 바라보면 그 의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찰의 곳곳은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바쁜 걸음이라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하였지만 비로전 옆으로 북극전이 얼핏 보인다.

 

북극전은 장수(長壽)를 비는 북두칠성을 봉안한 불전으로 칠성전이라고도 한다.
도교에서 비롯된 칠성신앙을 산신전처럼  불교가  토착신앙을 흡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불전이다.

 

 

 

 

비로암은 조끼와 마고자, 두루마기까지 고루 갖춰입은 한복 품새처럼

단청과 연못과 삼층석탑등, 어느 하나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말끔하고 정갈하다.

 

 

 

 

비로암의 주련에는

聲前一句圓音妙  성전일구원음묘

物外三山片月輝  물외삼산편월휘

風吹碧落浮雲盡 풍취벽락부운진

月上靑山玉一團 월상청산옥일단

棒喝齊施猶未宗 봉갈제시유미종

三玄三要絶孤踪 삼현삼요절고종

擊目相傳起念刻 격목상전기념각

 

<소리 전 일구의 원음이 묘한데/ 물질 밖의 삼산엔 조각달이 빛난다/바람이 허공에 부니 뜬 구름이 다 흩어지고

/달이 청산 위에 뜨니 한 덩어리 옥이런 듯/ 방과 할을 퍼붓더라도 오히려 종을 이루지 못하고/

삼현과 삼요라하지만 여기는 그런 자취마저 끊겼도다/ 눈을 마주쳐 서로 전함은 생각 일어나기도 전일세>

 

경봉스님의 글씨와 시(詩)로 극락암에 주석하고 계실 때, 상좌인
원명스님 에게 주신 것을 그 동안 보관하고 계시다가
주련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비로암 삼거리에서 백운암에 대한 마음을 꾸욱 누르고 극락암을 향한다.

 

 

 

 

◎ 極樂庵

 

영축산의 봉우리가 못 물에 비친다는 극락암의 극락영지와 홍교다.

홍교 앞의 벚나무에서 꽃잎이 풀풀 날리는 날의 모습은 얼마나 황홀할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차안에서 피안으로의 현실을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무량수각(無量壽閣)앞에 좁은 마루가 있고

그 앞에 극락암(極樂庵) 편액이다.

 

 

 

발 디딜 틈 없는 불자들로 부처님 전에 가지 못하고 종무소에 공양물을 전달하고 나오는 길에

난(蘭) 화분에 곁방살이 하며 법문을 듣는 괭이밥이 기특해 담아본다.

 

 

 

 

 

"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 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나무관세음보살....*

 

 

고색의 산정약수비 앞에 새로 만든 물확이 조금은 어색하다.

다양한 모습으로 된 여러개의 물확은 담기는 그릇의 모양을 탓하지 않고

갈길을 찾아 쉼 없이 나아가는 물의 모습과

다시 이슬로 내리는 물을 표현한 것일까? 

 

 

 

 

영월루에 걸린 "正法眼藏(정법안장)"

멀리 영축산의 마루금이, 수국의 푸른미소, 보살님의 마음이 바로 이것이겠구나..

말없는 이심전심....

 

 

 

 

모르는 것보다 잘 못 아는 것이 더 위험하건만

경봉스님이 거하시던 곳을 경허스님이라고 잘못 아는체하여

 일행을 이끌고 이리로 왔다. 에구...

 

 

 

삼소굴(三笑窟)

 

" 삼소는 과거 현재 미래의 미소인 삼세소(三世笑)와 과거 현재 미래의 꿈인 삼세몽(三世夢)을

초탈한 뜻을 간직하고 누군가 삼소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볼지니라."

 

이곳에서 경봉스님이 촛불이 문틈을 파고드는 바람에 부딪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고 悟道의 노래를 불렀던 곳이다. 

 

我是訪吾物物頭  아시방오물물두

目前卽見主人樓 목전즉견주인루

呵呵逢着無疑惑 가가봉착무의혹

優雲華光法界流 우운화광법계류

 

< 내가 나를 찾아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눈앞에서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하하 우습구나 이제 만나 의혹이 없으니/ 우담바라 꽃 광명만 온누리에 흐르네>

 

 

 

 

밖을 향해 놓여진 고무신

스님은 이세상 떠나 잠시 출타중이신가

 

 

   

 

 

유리창 너머로 경봉스님을 뵙는다.

워매...빛의 요술이다. 창에 비친 하늘과 현존 인물

 

 

 

삼소굴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종무소의 보살님이 공양물을 쌌던 보자기를 건네주신다.

쑥스럽지만 없는 솜씨로 직접 만든 보자기라 다음에 다른 쓰임으로 쓰시라구 돌려 드린다.

신기하게도 자투리 천으로 16개의 보자기가 딱 떨어지게 나왔고 마침 천의 무늬도 수묵화를

닮아 재봉질 하면서도 마음이 흐뭇했었다.

 

노란 모감주나무꽃이 피기 시작했다.

노란 꽃이 지기 시작하면 금비가 내리는 듯하여 'Goldenrain tree'라는 영명을 가진

이 나무는 불교와도 인연이 깊어 열매를 '금강자'라고도 부르는데 그 열매가 염주의

재료로 쓰이고, 쓰면 쓸수록 단단해 지는 특성으로, 단단하고 변치 않는 금강석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수세전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

 

 

 

 

눈으로 건넜던 홍교를 다시 눈으로 되돌아 나온다.

 

 

 

 

 

숲길을 걸어 반야암으로

 

 

 

◎ 般若庵

 

반야암의 지붕 합각에 원이삼점이다.

 

 


'원이삼점(圓伊三點) '

보통 사찰의 지붕 합각에 그려진 것으로

큰 원에 점 세 개를 그린 것

이는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의미하고,

계.정.혜(戒定慧)의 삼학(三學),
'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의 삼위일체를 상징'하기도 하고,

 

삼법인(三法印),

혹(惑) 업(業) 고(苦)의 삼도(三道)등을 의미하며

큰 원은 '우주법계'를, 세개의 점은 '열반 3덕'인 '법신, 해탈, 반야'가

서로 상즉하고 있음을 비유하고 있다.

 

 

 

 

 

반야암에서 오늘 일행의 점심공양을 준비해 주셨다.

재일이라서 많은 신도들과 겹치지 않게 조금 이른 시각이지만 

11시에 점심공양을 한다.

수고로운 손길에 예쁜 꽃마음으로 감사하며....*

 

 

 

 

 

공양을 마치고 종무소 보살님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풀꽃들과 놀기... 

 

▼ 사상자

 

 

 

 

 

▼ 젓가락나물

 

 

 

 

 

▼ 털별꽃아재비

 

 

 

반야암 입구의 배롱나무도 곧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금수암을 향해 숲길로 들어선다.

부산 걷기방의 백일봉님의 세심한 길안내로 누릴 수 있는 숲길이다.

 

 

 

숲속에는 좀작살나무 꽃이 수줍게 작은 꽃망울을 열었다.

 

 

 

 

시살등표지판이 시작되는 곳으로 내려서 금수암을 향한다.

 

 

 

 

◎ 金水庵

 

 

 

 

 

 

화려한 단청의 금수암은 수행도량인지라 문자 그대로 절간처럼 고요하다.

 

이런 느낌 참 좋다.

꽃잎 혼자 마음을 열어 놓고

 

 

 

 

바람 한 점 없어 커다란 파초잎은 미동도 않는 시간

물고기들만 못에 비친 하늘에 그림을 그린다.

 

 

 

 

 

 

 

 

 

돌아 나오며 반배하니 

산사열매가  까딱 응답해준다.

 

 

 

 

 

 

 

◎ 西鷲庵(서축암)

 

서축암은 1996년에 새로 지은 절이다.

 

 

 

.

 

 

 

 

팔작지붕의 인법당(因法堂)을 중심으로 좌, 우에
단아한 맞배지붕의 현무전(玄武殿)과 주작전(朱雀殿)이 있다.
인법당이란 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신 절을 뜻한다고 한다.

 

 

 

인법당 안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무채색 느낌의 탱화가 준엄하게 느껴진다.

다른 법당의 느낌과는 좀 다른 우아함과 세련됨이 느껴진다.

 

 

 

다보탑과 꼭 닮은 미니 다보탑,

이 다보탑 안에는 불사리를 모셨다한다

 

 

 

영축산과 소나무와 절집의 조화로움과 정갈함은

스스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준엄함이 느껴진다.

 

 

 

남 다른 느낌의 서축암은 모두 나무색 그대로와 하얀 회벽이 깔끔하게 조화를 이루어

화려한 단청의 색조와는 다른 단아함이 느껴진다.

 

 

 

 

서축암에서 바라보이는 영축산의 주능선

마치 부처님이 계시는 영축산의 느낌과 같아 서축암이라 이름 지었는가 보다.

 

 

 

나오는 길의 석등도 투박한 듯 간결하다.

 

 

 

◎ 자장암(慈藏庵)

 

영남알프스 7개의 봉우리가 북두칠성이고,

그중 북극성에 해당하는 영축산 중심에 자장암이 자리 잡고 있다한다.

원효대사보다 한 세대 위인 자장율사께서 통도사를 짓기 전에 머무르던 곳이다.

신라의 진골출신이신 자장율사(慈藏律師,590∼658)는

"내 차라리 계(戒)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깨뜨리고 백년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

 (吾寧一日持戒死不願百年破戒而生)"고 하여 출가를 허락받았다한다.

 

그 자장율사께서 머물던 자장암

기대가 컸다.

 

 

불사 중으로 많이 어수선하다.

원통형의 문도 한 옆으로 옮겨 놓고 떠밀려 법당을 향한다.

 

극락암 이후 느낄 수 없던 고찰의 느낌과

저 멋진 그림이 방해 받은게 못내 아쉽다.

 

 

 

 

좁은 법당안에 그대로 드러난 바위는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라는 엄한 법문 같다.

법당이 지어진 자리가 거북의 등과 같은 바위위로 이 바위는 거북의 꼬리에 해당하며

법당 밖 영축산을 향해 머리바위가 있으리란 추측해 본다.

또 아쉬움... 호젓이 다시 찾으리란 다짐이다.

 

 

 

▼ 자장암 마애석불

 

 

자장암은 지세를그대로 살려 배치한 듯 좁아 보이지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편에 관세음보살과 오른편에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두었다.

 

야단법석인 인파 사이에서도

고요히 찻물에 핀 백련이 잠시 부처님이 내려가신 연화대같다.

 

 

금와보살님~~~ !!!!

 

 

 

[펌사진]

 

아직 신심이 부족한 이에겐 보이지 않는 다는 금와보살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분별이 없어지는 날 내게도 보일 것이다.

 

 

 

 

자장암 뒤편의 숲길로 사명암을 향한다.

 

◎ 사명암(泗溟庵)

 

통도사 산내 암자 중에 규모가 가장 크기도 하지만

궁궐의 정원처럼 아름답기도 하다.

이렇게 바삐 지나치기엔 아쉬운 암자..

볕좋은 가을 단풍에 찾으면 극락이 바로 예일게다.

 

 

 

 

 

 

 

 

 

쫓기 듯 참배하고 나선 걸음을 누군가 붙잡는다.

돌아 보니 정자의 현판이 무작정(無作亭)이다.

올커니.... 어느날 무작정 [無酌定] 떠나 고플 때 바로 이곳이로구나

아뿔싸! 그러면 이미 무작정이 아닌게 아닌가???

 

 

 

 

작은 숲언덕을 지나 백련암을 향한다.

 

 

 

 

◎ 백련암(白蓮庵)

 

백련암은 1374년(고려 공민왕 23) 월화대사(月華大師)가 창건,

 대한제국 말기에는 남방의 선찰로써 유명하였던 곳이다.

경내에는 본전 법당, 광명전, 영월루(影月樓), 요사채 등이 배치되어 있다.

편액에는 백련사(白蓮舍)라 쓰여있고 백련정사(白蓮精寺)라고도 한다.

 

 

 

본전의 양 옆으로

왼쪽 명월선원(明月禪院) 과  오른쪽 염화파안(拈花破顔)·이라 걸려 있고

명월선원 현판의 글씨는 경봉스님의 필체다.

염화파안이란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많은 대중이 모인 가운데 설법하시다가

연꽃을 한송이 들어 대중에게 보이니 아무도 그 소식을 아는 자가 없었는데,

오직 가섭존자만이 그 이치를 아시고 빙그래 미소를 지었다.

이 일을 염화미소라고도 하고 염화파안 이라고도 하는데,

삼처전심중의 하나이며 쉽게 풀면 이심전심이 아닐까.. 

 

     

 

그리고 요사체

 

 

 

지붕선 참 기가막히다.

외씨버선의 버선등처럼 살짝 쳐든 모양은 뒷편의 대나무가

바람에 음율을 타면 너울 너울 춤사위로 보이겠다.

 

 

이곳도 가을날 무환자나무와 은행나무 노거수를 보러 다시 와 보아야 할 곳이다.

가을이 무르익는 날 훌쩍 다니러 오리라..

 

옥련암을 향해 오솔길로 접어든다.

 

 

 

 

◎ 옥련암(玉蓮庵)

 

 

[아라한(阿羅漢) 존재의 참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어 열반(涅槃) 또는 깨달음에 이른 사람을 일컬음.]

 

 

두그루의 소나무가 마치 불이문(不二門)같이 준엄하고

주 법당 건물의 한글로 쓰여진 '큰빛의집'.... 신선하다.

 

한자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또는 대광보전(大光寶殿)이니

법신불이신 비로자나불을 모시어, 화엄의 빛이 찬란한 곳이런가..

 

 

 

 

 

꽃창살문이 정교하고 화려하지만 우아하기도 하다.

어찌 이런 느낌을 줄 수 있을지....

깊은 뜻을 지닌 주련들을 그동안 그저 기둥에 적힌 한자로만 지나쳤는데

이런 기원이 담겨 있었다.

 

중생의 탐진치(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

계정혜[戒․定․慧 즉 계율(戒律)․선정(禪定)․지혜(智慧)]를 이르며

계율을 지켜서 선정에 들고, 선정을 익혀서 지혜를 얻고,

지혜를 열어서 생사없는 진리를 본다)는 발원이다.

 

 

 

법당안으로 들어서니

 

지권인을 수인하신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화려한 보관의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계시다.

삼존불 뒤의 후불탱은 부처님의 초기 제자인 250아라한이 목각으로 새겨져있다.

 

 

 

 

-목각탱은 무형문화재 목아 박찬수선생의 작품-

 

목각 아라한상

 

 

 

 

 

 

 

 

 

▼ 목각 신중탱

 

 

 

사자들의 탱글한 엉덩이와 용머리의 표정이 익삭스럽다.

 

 

 

법당에 머문 시간이 지체되어 무량수전을 밖에서 반배로 통과한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당이다.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이 무량수불이므로 무량수전이라고 부르며,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극락전(極樂殿)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 정토를 주재하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  서운암 장경각

 

옥련암을 지나 넓은 운동장 처럼 확트인 곳에 묵직하게 자리한 장경각에 이른다.

 

 


도자대장경은 서운암을 세운 성파 큰스님이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아

 

1991년 6월부터 제작하기 시작해 20년 만인 2011년에 작업을 마무리했다.

가로 52㎝, 세로 26㎝, 두께 1.5㎝로 하나의 무게가 4㎏이다.
900도의 불에 초벌구이한 도판에 팔만대장경 영인본을

실크스크린기법으로 새겨 유약을 발라 다시 1천200도의 불에 구워내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성파 큰 스님과 제자 5명, 기술자 20여명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도자대장경의 경판수가 팔만대장경보다 2배가 많은 것은

목판 양면에 불경을 새긴 팔만대장경과는 달리 도자는 한 면에만 인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900㎡ 규모의 암장경각은
760여년의 보존 비밀을 간직한 해인사팔만대장경의 장경판전과 흡사한 건물 구조로
건물의 앞면과 뒷면의 살창 크기를 달리해 대류현상을 이용한 것을 비롯해

서운암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점과
건물의 부식을 막기 위해 장경각 건물 전체에

전통기법인 옻칠로 단장했다.

 

 

 

 

 

 

 

 

 

야생화로도 유명한 서운암으로 내려서는 오솔길 양옆은 죽단화 길이다.

늦게 까지 홀로 핀 죽단화 한송이가 이름표처럼 피어 있다.

 

그런데 내려서는 길의 진짜 이름표엔 황매화라 쓰여 있다.

죽단화를 겹황매화라고 부르기도 하니 틀렸다 할 순 없지만

황매화는 종자번식이 가능하지만 죽단화는 그렇지 않으니

죽단화라 부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소나무위에서 특유의 울음을 울고 있는 청공작

 

 

 

 

◈ 서운암(瑞雲庵)

 

서운암은 1346년(고려 충목왕 2) 충현대사가 창건하였으며,

1859년(철종 10) 남봉대사가 중건하였고,

근래에는 성파(性坡) 스님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위선원을 개원하여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며,

감단지를 조성하여 사원재정을 확립시키셨고,  

사라졌던 우리나라 전통 천연 염색인 쪽(葉)염색기법을 재현하였다.
또한 환경오염과 화학조미료, 인스턴트 식품에 찌든 대중들에게 무엇인가 베풀 것을 찾다가
3년여 동안 연구한 끝에 생약재를 첨가한 전통 약된장과 간장 개발에 성공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 중이고,
근래에는 잊혀져 가는 야생화를 알리기 위하여 서운암 주변 20여 만평 야산에

 1백여 종의 야생화 수 만 송이를 심어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하여,

시민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출처 : 서운암홈페이지

 

 

 

성파 큰 스님은 서운암을 중창하고 도예를 하시면서 85년부터 5년 동안

 3,000불상을 흙으로 구워내 도자삼천불(陶磁三千佛)을 모셨다.

 

 

 

법당의 바닥은 짚으로 짠 멍석으로  되어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느낌이 피부로 느껴진다.

 

 

 

바깥은 뜨거운 볕에 푸르름도 숨죽이는 시간

 

 

 

그래도 세상이 궁금한 노랑어리연이 살금 꽃잎을 열고 있다.

 

 

 

된장을 팔고 있는 매점 옆 벤치에

엄마의 된장찌개가 그리웠을까

누군가 마음을 그려 놓았다.

 

 

 

내 어릴적 꽃신과는 다르지만

말표 고무신의 꽃단장이다.

 

 

 

 

 

 

 

공손히 공양물을 받들고 가는 길벗님..^^

참 선한 님들이시다.

 

 

 

◈ 수도암 (修道庵)

 

 

 

1372년(고려 공민왕 21년) 이관대사(爾觀大師)가 창건,

이후 정신대사(定信大師)가 중건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중수, 증축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법당의 현판은  월화대사(月華大師)의 필체다.

경내에는 현대에 조성된 법당과 요사채, 산신각이 배치되어 있다.

오늘 본 암자 중 규모가 가장 작지만 수행도량으로 이만하면 족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일행이 통과 하기에 조용한 참배를 한다.

어두컴컴한 법당에 모처럼 적요(寂寥, )가 함께한다.

 

 

 

수도암을 나서 안양암을 향하는 길에 만난 청청한 소나무다.

비뿌리는 흐린날엔 상상의 동물로도 보일 법한 힘찬 모습이다.

 

 

 

 

◈ 안양암 (安養庵)

 

안양동대라는 평평한 바위위에 자리 잡은 안양암은

통도사에 소속된 작은 암자 (庵子)이다. 본래 암자란 예불을 드리리는 불전(佛殿)과 달리,

수도(修道)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기 때문에 산 속 깊은 곳에 세워진다.

그곳에서는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수도에 열중할 수 있지 때문이다.

이 암자는 1295년(고려 충렬왕 21)에 창건 (創建), 현재의 모습은 1865년 (고종 2)에

중건(重建)된 것이라 한다. 얀양암의 경내에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를 비롯한 세 채의 건물이 있다.

 

그러나 본래는 현재의 북극전(北極殿)만을 안양암이라 불렀고, 나머지 건물은 뒤에 지은 것이다.

북극전은 사람의 장수(長壽)를 도와주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봉안하는 불전으로

칠성전이라고도 한다. 도교신앙과 관계있는 칠성신앙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수명신으로 불교화되어

칠성각에 봉안되었다. 칠성각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불전으로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 북극전

 

칠성전(북극전)에는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의인화한

칠성그림을 거는데 이곳 북극전에도 칠성탱화를 봉안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계 팔작지붕의 건물이지만, 기둥 간격이 2m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내외부는 화려하고 고급스런 장식을 연출, 작은 암자에 불과한 건물을

이처럼 잘 꾸민 것으로 보아 기복적(祈福的)인 칠성신앙이 조선 후기의 민중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 내렸는지를 알 수 있다. [경남 유형문화제 247호]

 

 

 

 

 

 

 

 

◈ 사자목 오층석탑

 

 

사자목에서 바라본 통도사 전경

 

 

 

시간이 지나 친견하지 못하는 적멸보궁을 사자목에서 당겨 본다.

 

 

 

그녀의 미소가 참 아름답다.

공양물을 대하는 마음이 온전히 번져 나온 미소다.

 

 

 

 

 

『통도사오층석탑복원기』

내용인 즉슨,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자목오층석탑을 복원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던 황룡사지에서 나온 불사리를 애초에 자장율사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 봉안하여

통도사의 기상을 드높혔다는 내용이다. 

 

 

 

간단하지만 매우 집약된 두마디다.

"웃자^^" ... 그리고 작은 고임돌..

 

 

 

요즈음 한참 몸값이 오르고 있는 어성초꽃이다.

 

 

 

취운암 경내에 들어선 오늘 길을 안내해 주신 백일봉님과 애다님

 

 

 

 

◈ 취운암(翠雲庵)

1650년(효종 원년)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창건하였고

1795년(정조 19)에 낙운대사(洛雲大師)가 중건하였으며,

1969년 태일화상(泰日和尙)이 다시 고쳐 지었다.

총 6동 128칸에 이르는 건물로 통도사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암자로써

근래까지 취운암 법당 뒤쪽에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과거에도 역대 고승들이 많이 주석하였던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부도들은 모두 통도사 부도전으로 이전되었으며

사찰 내에는 문화재 자료 364호로 지정된 '지장시왕탱'이 소장되어 있다.

 

 

 

단청과 꽃살문이 화려하고 정갈하다.

 

 

 

 

 

 

대흥루의 주련에 쓰인 글은

 

 

忽聞本來 不生滅 頓覺是我 一眞相

(홀문본래 불생멸 돈각시아 일진상)

홀연히 죽고사는 것이 없다는 그말을 듣는 순간에

몰록(頓 : 한꺼번에, 순식간에) 나라는 존재성이 생사에 구애받지 않는 일진상을 깨달았다.

 

       雖有萬行 本空寂 卽時如來 淸淨光

(수유만행 본공적 즉시여래 청정광)

내가 죽어서 천만번 생사윤회를 할지라도

이 자체는 변하는 법칙이 아닌것을 알았

이것이 바로 부처님 성품과 똑같은 여래의 청정심이다.

 

忽聞是汝 無佛性 홀연히 "네가 불성이 없다" 라는 말을

홀문시여 무불성

直下打破 閑思量 듣는 그 순간에 일체의 사량이 타파 되었다

직하타파 한사량

                  若人更問 趙州意 만약에 누가 나에게 조주를 다시 묻는다면

약인갱문 조주의

                 石人記取 暗思量 돌 사람이 기록을 하고 돌 사람이 암기사량을 하고있다

석인기취 암사량

 

 

 

옥색이 주를 이룬 대흥루의 단청을 살아 헤엄치는 듯 용머리의 수염이 꿈틀 댄다.

 

 

 

 

   

 

 

 

 

취운암을 나서 도로를 건너 보타암이다.

 

◈ 보타암 (寶陀庵)

 

보타암은 영축총림 통도사의 유일한 비구니 암자로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보타락가산을 의미하는 이름이라 한다.

 

 

 

 

 

보타암을 끝으로 암자순례길을 마치고

계곡을 거슬러 통도사 경내를 향한다.

 삼성반월교를 건너 경내를 순차적으로 살피고 싶었으나 돌아 나오는 길을 생각해서인지

금강계단으로 부터 입구로 나오는 길을 택한다. 조금은 아쉽다.

 

 

 

 

 

 

 

 

 

 

Song Ot The Reed - Tim McBrian( 팀 맥 브라이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