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앞이 안 보인다"..수주 가뭄으로 일감 줄어
올해 1분기 선박 수주 6척에 그쳐
수주 잔고 2004년 이후 최저 수준
【서울=뉴시스】황의준 기자 = 국내 조선업계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지난해 나란히 조(兆) 단위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수주 실적이 미미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일을 해도 대규모 손실을 냈지만 올해부터는 일감 자체가 줄어들어 매출 위축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저가 수주에 나서거나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발주 가뭄에 수주잔고 계속 줄어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가 올 들어 수주한 선박은 총 6척뿐이다. 금액 기준으로는 약 5억 달러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 포함)이 대형 유조선과 LP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등 5척을 수주했고, 현대미포조선이 소형 유조선 1척의 계약을 따낸 게 전부다.
세계 경기 둔화 및 저유가 여파로 선박 발주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올해 1분기만큼 수주 실적이 나바닥으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지난 2014년 1분기에는 총 58척(59억 달러)를 수주했고, 지난해 1분기에도 13척(17억 달러)의 물량을 확보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벌크선의 경우 운임이 워낙 낮아 작년부터 발주가 거의 끊어졌고,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은 지난해 발주가 많았다"며 "경제 상황이 계속 좋지 않다 보니 선사들이 발주를 보류하고 시장을 관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선사들의 수주 잔고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세계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은 지난 2월말 현재 2844만CGT(건조난이도를 고려한 가치환산톤수)으로 2004년 8월 말(2924만CGT) 이후 최저 수준이다.
아직은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회사별로 약 2년여 정도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다. 당장의 생산이나 매출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만약 수주잔고가 1년치 아래로 떨어질 경우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게 된다. 조선사들은 1년 단위로 도크 운영 게획을 세운다. 최악의 경우 도크를 놀리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조선사들은 도크를 채우려면 저가수주에 매달려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저가 수주조차 어렵다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
◇유가 반등에 기대 걸어
조선업계는 최근 국제 유가가 반등하자 잔뜩 희망을 거는 모습이다. 서부텍사스 원유는 올 2월 배럴당 26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최근에는 40달러 선을 회복했다.
유가가 반등하면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발주를 기대할 수 있다. 가격이 높지만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국내 조선사들이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다. 북미 셰일가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던 때 발주가 집중됐으나, 저유가 국면이 이어지자 자취를 감췄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올해부터 선박 배출가스 규제를 한층 더 강화한 상황에서 높은 연료 효율 등을 갖춘 최신 친환경 선박을 찾는 선주도 늘어날 수 있다. 저유가 때는 연비가 낮은 구형 선박을 운영해도 재정에 큰 부담이 없지만, 유가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면 경제성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친환경 기술도 중국 조선업체 등에 비해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대규모 적자의 주 원흉이던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들의 인도가 대거 이뤄진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각각 18기 20기의 해양 잔고를 보유 중이다. 양사 모두 올해 9기를 선주 측에 인도할 계획이다. 아울러 유가가 회복되면 선주 측의 일방적인 계약 취소, 대금 지급 및 인도 거부 등의 리스크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