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장법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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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자은사와 대안탑 |
ⓒ 이상기 |
자은사 정문인 남산문(南山門)에는 대자은사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여기서 자은이라는 글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은은 자은종(慈恩宗)의 준말로, 유식종(唯識宗)과 법상종(法相宗)과 같은 말이다. 이 종파는 현장법사가 인도로부터 가지고 들어온 불교의 유파로, 공(空)사상과 미륵신앙으로 대표된다. '인연으로부터 생겨나는 모든 법은 공하다'는 것이 공사상의 핵심이다. 미륵신앙은 도솔천에 계시는 미륵보살이 때가 되면 이 세상으로 내려와 널리 불법을 펴고 중생을 제도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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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탑신종 |
ⓒ 이상기 |
대자은사는 남산문, 대웅보전, 도솔(兜率)전, 대안탑, 현장삼장원으로 이어지는 중심축 좌우에 당우와 누각을 배치한 형태로 되어 있다. 우리는 대웅보전과 도솔전을 지나 대안탑까지 올라갈 것이다. 시간이 있으면 모란꽃이 피어있는 모란정(牧丹亭)과 이 절 출신의 큰 스님들을 기리는 승탑으로 이루어진 탑림(塔林)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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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보전 편액과 주련 |
ⓒ 이상기 |
불법의 바다가 현장 스님을 우러러 보았으니 法海仰?公
서쪽 인도에서 그를 두루 깨친 분이라 일컬었다. 西土亦稱大遍覺
유식학을 으뜸으로 널리 펼치셨으니 宗學弘唯識
이곳을 감히 나란다에 비유할 수 있겠네. 此地堪比那爛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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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보니불을 협시하고 있는 아난과 가섭 |
ⓒ 이상기 |
석가모니불의 뒤쪽 후벽에는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과 행원의 상징인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이들 불상, 보살상, 나한상은 모두 흙으로 만든 소조상이다. 그중 문수보살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명나라 때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머지 소조상은 명말청초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들 소조상 말고도 동서 양측 벽면에는 18나한상이 부조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가 아는 16나한에 자씨(慈氏)존자와 대편각(大遍覺)존자가 들어간다. 여기서 자씨존자는 자애로운 분이고, 대편각존자는 두루 깨달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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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전 |
ⓒ 이상기 |
미륵보살은 높이가 2.93m나 되는 금동불로, 화려한 광배를 하고 있다. 광배까지 합하면 높이가 4.16m나 된다.
우리는 이제 대안탑으로 들어간다. 이 탑은 당나라 고종 때인 652년 현장법사가 천축국으로부터 가지고 온 불경과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5층으로 세워졌다. 측천무후 때인 701년 이 탑은 사각칠층탑으로 증축되어 현재 탑의 원형이 되었다. 대안탑은 그 후 여러 번 수리와 해체를 거듭하다, 청나라 강희제 때 현재의 모습으로 중수되었다. 현재 탑의 높이는 64.1m이고, 1954년 설치한 계단을 통해 최상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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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안탑 |
ⓒ 이상기 |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사방으로 창문을 통해 서안 시내의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남쪽으로 현장법사 동상이 있는 광장이 보이고, 북쪽으로 분수가 있는 광장이 보인다. 분수광장 좌우에는 2003년에 지은 현장법사 기념관도 보인다. 대안탑과 대자은사는 이처럼 삼장법사로 시작해서 삼장법사로 끝난다. 대자은사를 찾은 많은 문장가들이 대안탑을 오르고 여러 가지 형태의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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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안탑 안의 불상 |
ⓒ 이상기 |
탑에 오르니 세계를 벗어난 듯 登臨出世界
7층 꼭대기가 창공에 맞닿아 있구나. 七層摩蒼穹
유식이 중국에 빛나는 건 唯識輝華夏
법사께서 대승을 하늘처럼 받들었기 때문이니라. 師尊大昇天
그런데 전반부 2행은 잠삼(岑參)의 시 '고적설거등자은사부도(高適薛據登慈恩寺浮圖)'에서 빌려왔다. 이 시는 오언고시(五言古詩)로 잠삼이 고적, 설거와 함께 자은사 대안탑에 오르고 난 다음의 감회와 결심을 표현했다.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시 만한 것이 없다.
천축국으로 법을 구하러 간 현장법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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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자은사 앞의 현장법사 동상 |
ⓒ 이상기 |
그렇지만 17년간 인도를 체험하고 돌아와서 쓴 현장의 여행기 <대당서역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여행기는 양과 질 모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대한 역사기록이기 때문이다. 총 12권 10만여 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불교뿐 아니라 138개국에 대한 총제적인 지식이 집적되어 있다. 특산품, 풍토, 생활과 풍속, 산천과 지리, 문화유산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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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역으로 가는 현장법사상 |
ⓒ 이상기 |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인적은 물론 하늘을 나는 날짐승도 없는 망망한 천지가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밤에는 귀신불이 별처럼 휘황하고 낮에는 모래바람이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두려운 줄 몰랐다. 물이 없어 심한 갈증이 나고 걸을 수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5일 동안 물을 한 방울도 먹지 못해 입과 배가 말라붙고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었다. 법사는 마침내 모래 위에 엎드려 수 없이 관세음보살을 외웠다."
그리고 17년째인 645년 1월 그는 불경과 불상을 가득 싣고 장안으로 금의환향한다. 그를 맞이한 건 서역으로의 출입을 금했던 태종이었다. 그 후 현장법사는 홍복사(弘福寺)에 주석하면서 646년 7월 <대당서역기> 12권을 완성했다. 그리고 648년 대자은사에 주석하면서 불경의 번역에 몰두했다. 그가 번역한 책은 <반야바라밀다경> 등 74부 1335권에 달한다. 그의 구법행적은 16세기 오승은(吳承恩)에 의해 <서유기(西遊記)>로 각색되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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