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암자와 절집 사람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통도사 암자 순례길

동자승12 2016. 7. 15. 15:18

청산을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을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통도사 대웅전. 4면에 각기 다른 편액이 붙어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려서 통도사로 향하는데, 동쪽을 향해 가파르게 솟아 있는 영축산이 ‘큰바위얼굴’ 같이 다가온다. 고속도로에서 보면 길게 영축산 북쪽으로 펼쳐지는 능선은 잔잔해 보이지만 대부분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1,000m가 넘는 고봉들이다.

우리는 통도사IC를 빠져나와 영축산 남쪽자락으로 흘러들어간다. 통도사로 들어가는 산문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사찰순례를 시작한다. 통도사의 가람배치는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등 세 영역으로 이루어져있다. 하로전에서는 영산전(보물 제1826호)을 중심으로 극락보전과 약사전이 마주보고 있다. 하로전 영역은 이 세 개의 불전과 만세루가 삼층석탑(보물 제1471호)을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불이문을 통과하여 중로전 영역에 들어서니 정면으로 대웅전이 바라보인다. 대웅전 앞쪽에 관음전, 대명광전(보물 제1827호), 용화전, 개산조당과 해장보각, 세존비각 등이 중로전을 이루고 있다.

상로전은 통도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영역으로 대웅전과 금강계단(국보 제290호). 응진전, 명부전, 삼성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통도사 대웅전은 웅장하면서도 J자형의 특이한 외관을 하고 있다. 이 건물에는 면마다 각기 다른 이름의 편액이 붙어 있다. 동쪽의 대웅전, 서쪽의 대방광전, 남쪽의 금강계단, 북쪽의 적멸보궁이 그것이다.


대웅전 뒤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불사리탑이 있다. 석종형 불사리탑에는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하였다. 그래서 금강계단 앞에 세워진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대웅전 유리창을 통하여 정교하고 화려한 불단 위에 모셔진 금강계단 불사리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는 19개의 산내 암자를 두고 있다. 통도사를 중심으로 불국토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들 암자를 찾아 떠나는 길이 ‘통도사 암자순례길’이다. 통도사 암자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서운암에 들어서자 5천여 개에 이르는 항아리가 인상적이다. 질서있게 정렬된 항아리들은 맞배지붕을 한 서운암 전각들과 어울려 소박하고 부드럽다.

서운암에는 통도사 수좌인 성파큰스님이 흙을 빚어 직접 구운 삼천도자불상이 있다. 우리는 삼천불상 앞에서 삼배를 올린다. 절을 통해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공경하는 생활을 다짐한다. 서운암에서 산비탈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니 전망이 확 트이면서 산 중턱 넓은 터에 장경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ㅁ자형 건물로 이루어진 장경각에는 성파스님이 11년 동안 도자기판 16만장을 만들어 인쇄한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대장경을 가슴에 담고 장경각 앞에 서니 영축산 줄기가 드넓게 펼쳐진다. 대장경에 들어있는 부처님의 말씀이 저 산에 다 들어있는 듯하다. 영축산 아래로는 인간세상이 바라보인다. 부처님의 말씀이 저 인간세상에서 실현되라는 의미일 것이다.  

 

서운암을 나서 옥련암으로 향한다. 암자로 가는 길은 붉은 적송과 활엽수들이 울창하여 그윽하고 고요하다. 옥련암에 들어서니 소나무 두 그루가 어깨를 기대어 산문을 대신한다. 오늘 암자순례에서는 암자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기로 하였기에 옥련암 법당에서도 삼배를 한다. 삼배를 하고나서 후불탱화에서 눈길을 멈춘다. 탱화는 대부분 그림으로 그려지는데, 옥련암 법당의 후불탱화와 내부벽면의 탱화는 목각이다. 옥련암 목각탱화는 250명에 이르는 아라한을 무형문화재 목아 박찬수 선생이 3년 6개월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백련암으로 들어서는데, 나옹선사의 선시를 새겨놓은 시비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청산을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을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날마다 마주하는 청산이고 창공인데, 나는 탐욕을 벗어놓지 못하고 화를 참지 못한다. 백련암은 조선시대에는 선풍이 뛰어난 선원으로 유명하였다. 환성, 경허, 만해, 운봉, 향곡, 구산 등 큰스님들이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백련암 법당에서 삼배를 하면서 탐욕으로 점철된 나를 응시한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간 선승들의 삶이 죽비가 되어 나의 등짝을 후려치는 것 같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가 목탁소리처럼 들려온다. 사명암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긴 직사각형 연못 가운데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한다. 연못 뒤로 축대와 담이 있고, 가운데 계단을 따라 오르면 사명암이라 쓰인 산문이 있다. 연못에는 수련이 피어있는데, 한쪽은 홍련이, 다른 쪽에는 백련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사명대사는 이곳에 모옥(茅屋)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 금강계단을 수호하였다고 전한다.


사명암에서 내려와 언덕을 넘어 자장암으로 향한다. 굽은 듯 곧은 소나무들이 순례객을 자장암으로 인도한다. 자장암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경치 좋은 설악산 어느 암자에 와 있는 것 같다. 커다란 바위 아래에 터를 잡은 위치하며 격조있는 소나무들만 해도 놀랄만한데, 암자 앞으로 유장하게 펼쳐지는 영축산의 모습까지 합쳐지니 천하절경이라는 단어가 무색치 않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연을 닮은 절집을 지었으니 이곳이 바로 극락정토 아니겠는가?


지장암은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하기 전 바위벽 아래에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라 의미가 깊다. 신라 진평왕 때 자장이 수도했던 움막은 나중에 회봉스님이 다시 지어 자장암이 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건하여 지금과 같이 정갈하고 아름다운 암자가 되었다.

 

서축암을 거쳐 극락암에 도착하자 장방형 연못과 연못 위에 놓인 홍교가 인상적이다. 이 연못은 영축산 봉우리가 비췬다고 하여 극락영지라 불리는데,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하얀 수련이 예쁘게 피어 산 그림자를 대신한다.


극락암은 근현대 고승인 경봉스님이 주석한 암자로 유명하다. 여여문(如如門)을 넘어서면 극락암 경내에 진입한다. 물이 흐르는 듯한 모양의 여여문 글씨는 경봉스님 글씨로 금강경의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에서 따온 말이다. 그 어떤 상(相)에도 걸리지 말고 한결같이 행동한다.


극락암에서 역시 울창한 소나무숲길을 따라 비로암으로 들어선다. 비로암은 이름 그대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암자다. 비로암은 통도사 19암자 중에서 멀리 떨어진 백운암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비로암에서는 주변이 시원스럽게 조망이 된다. 부처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드넓게 펼쳐지는 것 같다.

비로암에서 마지막 삼배를 올리고서 암자를 나선다. 산중턱을 면사포처럼 뒤덮은 흰 구름은 자유자재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빗물이 되어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여행 쪽지

▶통도사에는 19개 산내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들을 연결해 걷는 길이 통도사 암자순례길이다. 이 중에서 통도사 산문 밖에 있는 4개 암자와 영축산 8부 능선에 자리를 잡은 백운암을 제외한 14개 암자를 순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4개 암자를 순례하는 데에는 11㎞에 6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통도사IC→통도사 이정표 따라 10분 정도 달리면 주차장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