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이야기

쇼팽의 환타지아(Frédéric Chopin, Fantasia-Improvviso Op. 66 )

동자승12 2016. 7. 20. 12:35

 

 

음악에서 널리 알려진 쇼팽의 즉흥환상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먼저 즉흥곡이란 아무런 제약을 초월한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악곡을 만들고 진행하는 형태를 말한다.

 

쇼팽이 만든 즉흥곡은 4곡이 있으며 <1, 4>이 많이 알려졌는데,

특히 제 4번 환상 즉흥곡은 1834년의 작품으로 환상이란 제목은 그가 죽은 후 붙여졌다.

 

그는 살아있을 동안 이 곡을 무척 아꼈으며 죽은 후에 파기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지금에 와서는 4곡의 즉흥곡 중 가장 많이 연주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형식을 초월한 화려한 기교, 감미로운 선율이 아주 매혹적이다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 3. 1 - 1849. 10. 17

 

폴란드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탄생된다.

아버지 니콜라스 쇼팽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사회적인 불안을 피해 북쪽 나라 폴란드로 이주했는데,

처음에는 연초 공장에서 회계 일을 하던 그는 공장이 폐쇄된 후

스카르벡 백작의 집에 프랑스어 가정교사로 머물게 된다.

 

옛 귀족 출신 가정부 유스티나와 결혼 후, 13녀 중 둘째가 쇼팽이었다.

유아기 부터 피아노에 대한 기본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12세 때

 바르샤바 음악 학교 교장인 엘스너에게 정식으로 작곡 교육을 받는 영광을 가진다.

 

엘스너는 쇼팽의 음악적인 독창성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여러 가지로 배려했는데,

이것이 그로 하여금 피아노 작곡가로서 독보적인 인물이 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15세 때 그는 처녀작 론도 작품 1을 출판했고,

18세 때 베를린을 방문해 유럽 음악계를 견문했다.

다음해는 유럽 음악의 중심지 빈으로 가서 독주회를 열었다.

이때 슈만으로부터 "여러분,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

 여기 천재가 나타났습니다."라는 극찬을 받음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쇼팽의 마음은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바르샤바 음악원 성악과

여학생인 콘스탄치아 글라드코를 남몰래 사모하면서도 사랑 고백을 할 용기가 없었던 이유이다.

 

고민 끝에 그는 차라리 그녀 곁을 영원히 떠나리라 마음먹고 정처 없는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살아있는 동안 두 번 다시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는 여러 나라를 전전한 끝에 파리에 정착, 음악가로서 지휘를 굳혀 갔다.

 

26세 때 리스트의 소개로 쇼팽은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진취적인 여류 소설가 조르쥬 상드를 만났다.

그때 이미 그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섬세하고 내성적인 기질의 쇼팽은 남장을 하고

엽연초를 피우는 6세 연상의 상드의 극진한 병간호를 받으며 작곡에 전념했다.

 

 이들은 마요르카 섬에서 사랑의 공동생활을 즐겼는데,

이곳에서 쇼팽의 병세는 악화되었지만 주옥같은 명곡들을 많이 작곡하게 되었다.

하지만 화려한 사교 생활을 좋아하는 상드와 내성적이고 고독을 즐기는

쇼팽이 언제까지나 이러한 생활을 견딜 수는 없었나 보다.

그들의 공동생활은 1846년 그의 나이 36세 때 끝이 났다.

 

그후 그는 생계를 위해 한때 그의 문하생이었던 스털링의 초청으로

스코틀랜드에 갔다가 기후가 몹시 나쁜 그곳에서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었고,

 급기야는 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병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결국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그의 몸은 피에르 라세즈 묘지에 묻혔고, 그의 유언에 따라 심장은

모국 폴란드의 바르샤바 성십자 교회에 안치되었다.

 

쇼팽은 일생을 거의 피아노곡 작곡에 전념했다.

그러나 예외로 만든 6개의 관현악곡, 3개의 소나타 역시 빛을 발하고 있고,

 즉흥곡, 녹턴, 마주르카, 왈츠, 폴로네이즈 등은 쇼팽이 개척한 피아노곡 형식이었다.

새로움이 가득한 그의 곡들을 후대의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정교함과 치밀한 악상을 독창적으로 사용한 쇼팽은 선배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자의 세계를 열고 음악의 세계에 군림하기 시작한 인물이다.

 

 

 

 

영원한 낭만파 피아니스트 조르쥬 상드의 무덤. 쇼팽에게 있어 가장 밝은

태양이었던 상드도 1876년 열정의 불꽃을 모두 다 사르고 여기에 묻힌다.

 프랑스 중부 노앙 지방에 눈부시던 태양도 그녀의 주검 위에서는 슬며시 그 빛을 감추고 만다.

쇼팽은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작곡가이다..

 19세기를 대표하는 낭만파 피아니스트이며 또 주로 피아노만을 위해 작곡했기 때문이다.

 

더욱 이 매력적인 일은 쇼팽의 선율이 언제나 쉽게 이어지면서도 매우 풍부하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모든 연주자들에게 그의 피아노곡이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악기를 다루거나 또는 노래를 부르듯이 연주할 수 도 있다.

쇼팽은 피아노를 위해서 많은 곡을 만들었다.

그러나 연주를 하는 데에는 많은 기교적인 어려움이 숨어 있다.

예를 들면 24개의 연습곡은 각각 기술적 난점이 다.

 물론 모두 아름답지만 결국 훌륭한 연주자라면 기교의 어려움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쇼팽의 녹턴이라든가 또 세계적으로

이름난 왈츠 곡들을 남긴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모두가 연주하기에는 어려운 작품들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쇼팽을 말하자면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사랑하고

선호하면서도 연주하기에는 가장 어려운 음악가 중에 한 사람이라는 평이 있다.

 

 

'사랑합니다'의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