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통도사 경봉대선사어록 5
다시듣고 싶은 경봉대선사어록 5
- 경봉선풍중진불사회 취재이야기
17. 석정스님과 법거량
- “그러면 산신은 신통이 있는데 어째서 부채를 가져야 꼭 되느냐?”
[석정스님] 한 번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내가 산신탱화를 하나 모시고 싶은데 스님이 좀 해주시오.” 그래서 산신탱화를 하나 그려서 갔더니, 산신탱화가 손에다가 학 날개를 이렇게 날개 쭉지를 떼어서 손에다 잡고 있는 부채를 잡은 그런 그림을 그렸어요. 그래서 그걸 보시고는 하시는 말씀이, “산신은 다 부처님 계를 받고 살생을 하지 않는데 어째서 학의 날개를 그렇게 떼어서 부채로 사용할 수가 있느냐?”그래서 내가 답하기를
“그 전단향을 쪼개면 다 조각 조각이 전부 전단향이듯이 산 학이 몸을 넣으면 전부 다 산 학입니다. 죽은 학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산신은 신통이 있는데 어째 부채를 가져야 꼭 되느냐?”
“그 부채는 신통을 돕는 겁니다. 그러니까 봄에 부채를 붙이면 꽃이 피고, 여름에 부채를 붙이면 녹음이 무성하고, 가을에 부채를 붙이면 단풍이 들고, 겨울에 부채를 붙이면 눈이 오고 그렇습니다.” 그랬더니, 그 참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고 그러시더라고요.
- 인간문화재 불모佛母 삼락자 석정스님
18. 경봉선사의 가풍은 봄바람 같은 자비의 가풍
-“꽃은 그려 보일 수 있으나 향기는 그려 보일 수 없다.”
큰스님 말씀을 생각해보면 생각나는 말이. “꽃은 그려 보일 수 있으나 향기는 그려 보일 수 없다!” 는 그런 말이 아주 절실하게 생각납니다. 그 어른이 원체 향기로운 꽃이다 보니까,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 분 향기는 언감생심 말씀드릴 수가 없고, 그 분의 이제 꽃만 그려 보이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도인道人들의 가풍을 이렇게 보면 아주 추상秋霜 같은 곧 가을 서리 같은 가풍이 있는가 하면. 우리 경봉 큰스님 가풍은 정말 ‘봄바람 같은 그런 가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일日자 타陀자 은사 스님도 그 어른을 이야기 할 때마다 참, 그분은 아무리 용맹스러운 장군도 지혜로운 장군을 못 당하고, 아무리 지혜로운 장군도 덕을 쌓은 덕장德將한테는 이건 해볼 수가 없는 것인데, 그분이 아주 대표적인 덕장입니다. 저희 은사스님이 늘 거기서 살았을 때를 이렇게 회상하면서 “참 그 어른은 덕인德人이셔. 덕이 너무 출중出衆하셔.” 그렇게 할 정도로 그 분은 가풍 자체가, 제가 느끼는 그 분은 마치 봄바람에 따뜻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온 산천초목을 그냥 싹이 나도록 하는 그런 가풍이라고 봅니다. 저는 경봉 큰스님 하면 그냥 남풍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생각날 정도로 그 어른이 계시기만 해도 그 주위가 훈훈하고, 수좌들이 무서워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덕화에 저절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런 가풍이라고 생각합니다.
19. 향성무진香聲無盡의 도인 경봉스님
- 도道 따로 있고 삶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도와 삶이 하나가 되신 분
- 빈 치마저고리도 걸어 놓으면 소리가 나는데 살아있는 사람이랴
그 어른은 향기란 코로 맡는 게 아니라고 “향기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된다.”고. 그런데 그 분은 향기를 그 분 스스로가 소리를 냈어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그 양반이 꾸부정하니 앉아 계시면, 그 어른 계신 데 가보면 앉을 자리도 없거든요. 얼마나 어질러 놨는지, 그런데 거기서 향기 소리가 나요. 그걸 우리가 듣지를 못해서 그렇지 그 분은 향기를 피운 게 아니라, 향기소리를 내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또 하나는, 그때 이제 경봉 큰스님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사부대중이 다 모여 살도록 했습니다. 스님들이 스님들 선방이 있고 바로 그 옆에 재가자들 선방이 있는데, 보살들이 많이 싸우더라고요. 그렇게. 많이 다투어서 찌그락 찌그락 하길래. 그때 제가 워낙 젊어서 제가 입승을 보면서 조실스님 방에 찾아가서,
“스님, 저 보살들 공부 안하고 맨날 시비만 하고 그냥 보내버릴 겁니다. 다 보내야 한 번 정신 차리지 않겠습니까?” 하니까 노장님이 아주 같잖은 거죠. “거기 앉아봐라.” 꿇어앉으니까.
“내가 소싯적에 말이다. 빈 방에서 부시럭 부시럭 소리가 나요, 쥐가 들었나 해서 가보니 아무 것도 없더라. 그랬는데 옆에 방에 부시럭 부시럭 하고 두 번 세 번 반복 되길래, 문틈으로 이렇게 보니, 치마 저고리가 두 개 걸렸는데, 두 놈이 바시락 바시락 소리가 나요. 빈 치마저고리도 걸어 놓으면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하물며 그 안에 살아있는 생명이 가면, 저게 법이구나! 저게 도구나! 저게 인생 흘러가는 강물이구나! 해야지. 뭐? 쫓아보내?”
지금도 그 말씀이 늘 가슴 속에 생생합니다. 그 어른은 모든 보는 것이 도道 따로 있고 삶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도와 삶이 하나가 되신 분이에요. 그 모든 삶이 도와 하나가 되다 보니까 말 한 마디 하시는 것, 산 한 번 이렇게 돌아오시는 것, 오다가 이렇게 먼 산 한 번 보는 것, 전부 도의 향기이고 도의 향성香聲이에요.
- 충주 석종사 선원장 혜국스님
20. 노스님의 생활이 다 법문이에요. 자기 소리를 하시는 선지식이에요
“멋지게 이 세상에서 연극 한 바탕 잘 하고 가거라.”“물 같이 살아라”
경봉 노스님은 한두 번 뵌 적이 있습니다만,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외국에서 신부님들이 운문사를 방문했을 때, 그때 신부님들이 경봉스님의 법력을 듣고 친견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같이 뵈러 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 때 뵌 모습으로는 아주 인자하시고 친근감을 느꼈어요. 마치 할아버지를 대하는 것처럼. 그리고 법문을 하실 때도 어렵게 하지 않고 아주 평범하게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렇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자주 노스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아주 법문의 골자를 한번 말하자면 “멋지게 이 세상에서 연극 한 바탕 잘 하고 가거라.” 그것이 핵심이에요. 우리가 다 연극하는 배우들이에요. 그런데 어떤 연극을 하고 가느냐가 문제지요. “멋진 연극을 하고 가거라.” 또 “물 같이 살아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물은 순리대로 흐름을 따라서 흘러갑니다. 바위가 나타나면 바위를 돌고 마침내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거라. 그러니까 무슨 조사어록祖師語錄의 어려운 문구를 인용하지 않으시고, 아주 우리들에게 노파심절老婆心切하게 쉽게 법문을 말씀하셨습니다. 노스님의 생활이 다 법문이세요. 그 노장님은! 생활이 다 법문이세요. 그래서 경봉스님께서는 자기 소리로 법문을 하신 선지식이에요.
21. 사리암 독성소상을 모시고 와서 봉안하시고, 7일간 기도를 회향하면서 증명도 해주셨어요. 지금의 운문사 가람이 있게 한 중요한 불사입니다
이제 그러니까 1956년,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인데, 그때 노스님 연세가 65세 때입니다. 그때 이제 56년 5월 20일에 밀양포교당에서 사리암 독성소상獨聖塑像을 모시고 와서 봉안하시고, 22일부터 7일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28일날 회향하면서 증명도 해주셨어요. 지금의 운문사 가람이 있게 한 중요한 불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거기서 나온 비용은 학인승들의 서적 구입비라던가 의료비 등 실제적으로 학인스님들에게 혜택을 입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리암에서 기도하는 불자가 그렇게 많다고 생각 안 했는데, 차차 신도들이 많이 모여들어요. 그래서 사리암은 낙산사 홍련암,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한국의 4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습니다. 옛날에는 어느 사찰이나 할 것 없이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200명이나 되는 학인스님들이 지금까지 별 불편 없이 경전을 연구하는데 전념할 수 있는 것도 경봉 노스님의 덕화德化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 ‘화산집華山集‘은 경봉스님과 서로 문답한 도담道談으로, 권두언을 경봉스님께서 써주신 것으로 보아 수옥스님을 많이 아끼신 까닭이지요
[질문]제가 이제 이렇게 운문사 사적事蹟하고 비교를 해보니까, 내원사 전 주지하시던 수옥스님과는 어떤 인연이셨는지, 그리고 경봉스님께서도 수옥스님을 상당히 아끼신 걸로 그렇게 나옵니다만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지요.
[명성스님] 정수옥스님은 근래의 정해옥스님, 금룡스님과 함께 비구니 3대 법사이면서 강사이십니다. 수옥스님은 제가 건당한 법은사이기도 합니다. 그 분이 수행력으로 인해서 경봉스님과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아주 좋은 인연이었다고 봅니다. 후학들이 수옥스님 입적 후에 시집인 ‘화산집華山集’을 출간하게 되었는데, 경봉스님과 서로 문답한 도담道談으로 후학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두언을 경봉스님께서 친히 써주신 것으로 보아서 수옥스님을 많이 아끼셨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 운문사 회주 죽림헌 명성스님
-- 통도사 보궁지 2556년 11월호 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