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이야기

同行 / 시인 이정숙님

동자승12 2015. 1. 9. 06:27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명정스님의 법문을 듣고 비로암 원주실에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자작(自作) 詩를 낭송한 후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목소리가 하도 애절하여 그냥 쳐다만 보았습니다,

분명 시인은 깊은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느껴 왔습니다. 나는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나 몰래 눈물 흘리며 혼자 바닷가를 거닐며 절규하던 지월(智月)의 지난 삶을 보았기 때문 입니다.

 

 

이정숙(법명 : 이 애량) 시인 및 시낭송가

 

- 이정숙의 삶과 -

 

. 가슴으로 시를 쓰고 가슴으로 읊조리는 시인 

 

이정숙 시인은 특별하게 부여 시낭송 행사에서 종종 뵐 수 있는 분이다. 초청을 받으면 그녀는 행사 당일 검은 고무신을 신고 나와서 자작시를 가슴으로 읊었다. 이어서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불흔다. 특히 이정숙 시인이 가슴으로 부른 노래는 나름대로 익힌 독창적인 창법에 의한 절창이기도 했거니와, 그 가삿말을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하도 애절하게 전달하는 통에 시낭송회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았다. 물론 개인의 신상에 관하여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녀는 깊은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여인임에 틀림없었다.

 

이정숙 시인은 부여시낭송회 때마다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이 나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 주곤 한다. 또한 그녀는 누구보다 시낭송회에 참여하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고 있다한 마디로 이정숙 시인의 매력은 온몸으로 시를 쓰고 온몸으로 시를 읊조린다는 점이다. 게다가 시인은 노래에도 타고난 소양이 있어서 감치고도 애간장 녹이는 목소리로 매달 시낭송회에 모이는 사람들을 두루 행복하게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이정숙 시인의 시를 슬기로운 눈빛으로 들여다보는 이유 및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 이다.  이정숙 시인은 첫째 인성이 순박하고 정이 많아서 좋기 때문이다. 즉 그녀한테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가슴으로 진솔하게 쓴 그녀의 작품이 왠지 끌리기 때문이다.

 

이정숙 시인은 1957년 강원도 홍천군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전가족이 서울로 이주하는 바람에 소녀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녀는 서울에 있는 혜원여고를 졸업하였다.

 

이정숙 시인은 2001열린문학지에 시별똥별, , 앉은뱅이 사랑등으로 우리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 세 편은 그녀의 삶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즉 하늘의 별에서 버림을 받은 별똥(隕石), 흙을 사랑하는 자연친화의식, 앉은뱅이꽃의 비극적인 사랑 등을 읊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람은 누구나 애초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또는 살다가 졸지에 닥친 크고 작은 불운이나 엄청난 시련에 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몇 가지 애환과 한을 품은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정숙 시인의 경우는 그 정도가 타인에 비해 무척 가혹했던 것 같다. 이제까지 걸어온 그녀의 삶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말미암아 부평초 같은 삶으로 연속되고 있는 성싶다. 즉 그녀는 가족(남편, 두 딸)과 헤어진 이래, 그동안 강원도 양양군,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예산군 덕산면, 강원도 주문진, 춘천, 보령시 등으로 옮겨 다녔다. 그런즉 자기가 머물고 싶다고 계속 그 상태가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들만 하면 또 다시 떠나야 하는 운명이 얄궂게 느껴지기도 했으리라. 때로는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떠나야 하는 처지와 입장에 놓이게 되기도 하였으리라. 때로는 인간적인 배신감과 야속한 모멸감을 절감하기도 하였으리라. 그때마다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민의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평소 표준말과 강원도말과 충청도말을 자유롭게 버무려 구사하는 이정숙 시인의 말투로 미루어, 아마 오래전 가족과 혈육들과 헤어진 것 같다. 이후, 그동안 수많은 시련과 역경 등 모진 풍랑을 겪으면서 각지를 이리저리 나그네처럼 떠돌다가, 너무나 지친 몸을 이끌고 두메산골에서 기거하고 있다. 즉 시인은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에서도 시내버스가 하루에 아침과 저녁으로 두 차례밖에 다니지 않는 외진 미산면 풍산리 이곳 산골마을 옛주인이 여러 해나 비워둔 이농민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한 마디로 이정숙 시인은 한 많은 산장의 여인인 셈이다. 인생살이가 너무 힘들고 벅찬 그녀는 한 줌 목숨 쥐고 산다는 것이 / 지랄이다’(-사랑첫연 -)고 절규하고 있다. 따라서 이정숙 시인의 시는 자연히 이 같은 파란만장한 질곡의 세월에 대한 아픔이요, 인고의 편린들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2. 이정숙 시인의 시세계

 

시는 크게 머리로 쓴 시와 가슴으로 쓴 시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이정숙 시인은 가슴으로 쓰는 시인이다. 그런즉 필자는 시인의 시세계를 가슴으로 느껴보고자 한다.

 

외로움과 그리움

 

이정숙 시인의 시는 외로움과 그리움에서 출발하고 있다. 흔히 외로움은 혼자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생기는 심리 반응이다. 즉 사람은 정겹고 그리운 대상과 함께 있지 못할 경우, 외로움과 그리움의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외로움과 그리움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어서 외롭기에 누군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한편 누군가 그리워지기에 외로워지기도 한다.

 

여전히 함박눈이 내리는 첫 새벽길을

함박함박 맞으며 걸었습니다.

 

-함박눈1-

 

우리는 이 시를 통해서 시적 화자의 심신이 얼마나 춥고 외로웠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남들이 고이 잠든 겨울밤에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에 사무쳐 함박눈을 맞으며 새벽길을 걸었던 것이다.

 

이정숙 시인의 삶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적인 삶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녀는 충남 서산시 부석면 소재 서해안 간월도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읊고 있다.

 

나는 저녁이면 갯벌에 누워 바다로 떨어지는

한 알의 능금을 사모하는 여우가 되어야만 했다.

 

아주 깊은 골짜구니의 참나무 밑 여우 굴이 그리워

스스로 태워야 비로소 그리움의 빛깔로 물들이는

섬 마을의 소쩍새 우는 소리를 밤마다 들어야만 했다.

언젠가는 숲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갈망의 푸른 눈이

바다 속 고기들을 불러 모으고

 

섬 하늘의 별들은 날마다 나의 기도를 들으며

빛나는 눈물의 빛줄기를 바다로 쏟아 부어야만 했다.

(4, 5, 6연 생략)

 

-서해(西海)로 간 여우의 꿈-

 

 

이정숙 시인과의 만남과 그녀의 詩 세계는 지월의 일기장에 묻어두고, 여름이면 자주 찿던 천성산 노전(爐殿)으로 향 했다. 노전으로 가는 길은 한 폭의 산수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쉽게도 홍수로 인하여 폐허가 된 개울길이지만 그런대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걷기 좋은 길이다.

 

노전에 가면 버선도 신지 않고 반가워 달려 나오시는 속가의 누님 같은 스님이 주석하시는 암자 이다조용한 고찰인 노전암에 들어오니 절에서 키우는 개들이 반갑게 컹컹 짖기시작한다. 노전암은 신라의 원효대사가 세운 89암자 중 하나. 요즘엔 비구니 10명이 기거한다. 대웅전은 정면 3,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대웅전보다 유명한 게 노전암 절밥이라고 소문이 나서 절밥 먹으러 노전 가자는 말도 있을 만큼 이곳 노스님의 인심은 후 하시다. 

오늘도 통도사 해운대포교원에서 오신 보살님들 50여분이 점심 공양을 하고 계신다.

 

 

이정숙 시인은 점심 공양후 이 날 노전을 방문한 보살님들에게 자작시와 '봄날은 간다'을 멋지게 부르시고 하루를 노전에서

보내고 통도사로 왔다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며,,,,, 

 

'사람들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바라기  (0) 2015.01.21
추울 대 생각나는 친구  (0) 2015.01.15
人緣(인연)  (0) 2014.12.26
智月의 형상  (0) 2014.12.16
  (0) 2014.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