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이야기

제일 비싸게 팔린 그림

동자승12 2015. 1. 22. 10:04


"내 가슴 속에는 끌 수 없는 불꽃이 있어. 이 불꽃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알지 못해도 더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할 불꽃이라는 느낌이 들어."


불꽃과 같은 인생을 살았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동생 테오(Theo)에게 보낸 편지 속에는 불꽃과 같은 해바라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를 '햇빛이 비치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황빛 노랑'이라 말하며 특별한 애정으로 대했지요.


"황금이라도 녹여 버릴 것 같은 열기, 해바라기의 그 느낌을 다시 얻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 온통 거기에만 집중해서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정말이지 쟈넹에게 작약 그림이 있고, 코스트에게 접시꽃 그림이 있다면, 고흐에게는 해바라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1887년부터 '꽃병에 꽂힌 열두 송이 해바라기'나 '두 송이의 해바라기'와 같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고흐가 1888년 일곱 번째로 그린 가로 76.5Cm, 세로 100.5Cm의 '해바라기' 그림은 화병에 꽂힌 해바라기들을 고흐 특유의 필치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987년 일본의 야스다 해상화재보험회사(현 손보재팬)가 창사 100주년 기념으로 영국 크리스티(Christie) 경매에서 3990만 달러(400억원)에 사들였습니다. 2002년 자산재평가과정에서 내린 감정가는 8천만-1억 달러(1000억원)랍니다. 현재 도쿄 도심의 초고층 본사 건물에 위치한 도고세이지미술관이 전시되어 있는데 ‘해바라기’가 그 미술관의 다른 작품과 수준차가 너무 현격하여 미술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인질’이라고까지 표현했다고 합니다.


"자연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아. 자연이 말을 걸면 내가 속기로 받아 적는 셈이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처럼 반 고흐는 자연에 매료되어 평범한 자연물들을 걸작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러나 고흐는 해바라기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양귀비, 들장미, 글라디올러스, 아네모네와 같은 꽃들과 복숭아나무, 아몬드 나무, 아카시아, 자두나무, 배나무와 같은 꽃나무들이 즐겨 등장합니다.


꽃을 그린 그의 작품 중에 하나가 ‘해바라기’가 팔렸던 해에 소더비(Sotheby) 경매에서 5,390만 달러(550억)에 팔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꽃 그림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정신병의 악화로 요양원에 있는 동안 그린 그림인데 그곳에서 본 이 꽃은 해바라기와 마찬가지로 고흐를 단번에 사로잡아 버립니다. 그는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황혼부터 새벽까지 나는 이 자연의 교향악에 젖어 내 자신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라고 고백합니다. 도대체 해바라기보다도 더 비싸게 팔린 이 작품의 주인공이 누구일까요? 그것은 바로 붓꽃이었습니다.


이 그림이 어떻게 550억이나 하는지 제 짧은 소견으로는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550억짜리 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지요. 그러던 중 우연히 동의대 배철영 교수님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글에는 이 그림에 숨어있는 의미들 중 하나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그림에 색을 칠하시면서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여러 대립하는 보색들을 상호 대비시킴으로써 각각의 색채가 충돌해서 서로를 강화하는 시각적 효과를 최대한 올려놓았다. 좌 상단 패랭이꽃잎에 칠해져 있는 오렌지색과 진노랑은 붓꽃의 파랑의 다양한 변조들과 보색 관계를 이루고, 다시 파랑의 꽃잎들 사이사이에 보색인 노랑을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파랑은 더욱 짙어져 보라가 된다. 다시 화면 아래의 흙은 연갈색과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줄기와 이파리는 이들과 보색인 녹색이 색조를 달리하며 칠해져 있어 그 강렬함이 증폭하여 서로의 질감마저 두껍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화면 좌측에 유난히 짙은 줄기 위의 저 흰 꽃은 왜일까? 단지 보색 관계의 색들로만 채워져 버리면 화면이 너무 단순할 수 있기에 가해진 우연한 회화적 보완인가?... 그는 자신이 본 풍경과 둘로 나뉠 수 없었고, 그리는 대상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화면의 저 생동감과 흰 붓꽃을 하나의 알레고리(allegory, 은유적인 상징)로, 그러니까 자연과 고흐가 특이하게 조우하는 순간을 나타낸다고 읽지 않을 수 없다...’


즉 흰 꽃은 붓꽃에 완전히 동화된 고흐일 수 있으며, 이 그림을 본 사람은 고흐가 거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그만한 대가를 지불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아빠, 왜 고흐의 꽃들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지혜야. 아빠는 가장 비싼 고흐의 이 꽃들을 눈 속에서 보아왔단다. 처음에는 아무리 봐도 해바라기를 닮은 것 같았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붓꽃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눈 속에 그런 곳이 있어요?”


짐작을 하셨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비싼 꽃들이 있는 그곳은 바로 홍채(Iris)입니다. 해바라기처럼 생긴 홍채는 정말 해바라기처럼 항상 빛을 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두운 곳에서도 그러합니다. 어두울 때는 빛을 향하여 몸을 웅크려 가상의 공간(동공, pupil)을 활짝 열어놓습니다. 그러나 눈부신 태양이 뜨면 홍채는 몸을 활짝 펴서 인사를 합니다. 이때부터 동공은 빛의 강약에 반응하여 마치 새들의 날개 짓을 하는 것처럼 몸을 웅크렸다 펼쳤다 하는 동작을 반복합니다. 마치 춤을 추고 있는 듯한 이 모습은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표시입니다.


“해바라기와 홍채는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붓꽃은요?”
홍채가 붓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 붓꽃의 이름이 홍채와 같은 아이리스(iris)이기 때문도 아니고, 모습이 비슷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홍채를 들여다보고 행복을 발견하려는 제가 마치 붓꽃에 매료된 고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별 모양을 하고 있는 홍채의 수많은 주름들이 햇빛을 보면서 중앙의 둥근 블랙홀을 중심으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은 안과 의사들만이 볼 수 있는 축복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 춤 속에는 빛을 향한 생명의 몸짓 외에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밀고 당기는 팽팽한 줄다리기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그 신경의 줄을 타고 우리의 감정이 전달되어 동공은 끊임없이 출렁거리게 됩니다.


제게도 힘들고 외로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지요.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우연히 그녀의 눈과 똑바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녀의 춤추는 홍채를 보게 되었지요. 홍채의 중앙에는 검은 동공이 있었는데 그 곳에 연결된 신경의 줄을 타고 그녀의 마음이 비쳐지는 순간 전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지요. 이 춤에 한 번 매료되고 나자 홍채의 중앙에 만들어진 블랙 홀 속으로 한 없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마치 요양원의 고흐가 붓꽃과 하나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홍채(iris)는 그런 곳입니다. 항상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같은 곳, 그리고 힘든 시절 한 남자를 감동시킨 붓꽃(iris)과 같은 곳, 해바라기와 붓꽃보다 더 소중한 그녀의 마음이 전달되는 곳 말입니다.


'사람들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중섭과 마사코의 사랑  (0) 2015.01.30
사랑이란  (0) 2015.01.30
해바라기 / 고갱과 고흐  (0) 2015.01.22
해바라기  (0) 2015.01.21
추울 대 생각나는 친구  (0) 2015.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