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향한 해바라기를 닮은 고흐의 열망은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또 파리에서 아를로 조금이라도
태양(빛)에 가까이 접근하려고 따라간 셈이다. 년간의파리의 생활에 심신이 지쳐버린 고흐는 마침내....
1888년 2월 20일 하얗게 눈 내린 아를로에 도착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태양에 대한 집념은 보다 밝은 태양(빛)을 찾아서 남프랑스 아를로 오게 되었고, 아를로 이주한 뒤부터 오베르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약 2년 반이야말로 자신의 예술을 불꽃처럼 태우게 되는데, 아를로에서의 생활은 그 첫번째로 '제 1 전성기' 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글거리는 밝은 태양, 빛나는 별, 사이프러스 숲, 카페, 강과 다리등 맑고 밝은 풍광에 사로잡혀 건강도 돌보지않은채 오로지 그림 그리기에만 열중한다.
고흐는 자화상을 그려 고갱에게 보낸다
"당신이 내 모습을 볼 텐데 이 작품은 동시에 우리 모두의 모습이며, 사회로 부터 희생당한 가련한 자들이고 모든 것을 사회에 친절로 반환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1888년 9월16일경 고흐가 "
자화상을 고갱에게 보내면서 쓴 글
또한, 고흐는 고갱을 기다리며, 8월에 세 점의 해바라기를 동시에 작업 한다. 그리고 하나를 더 추가해, 네 점의 대형 해바라기 그림을 고갱이 머물 방에 걸어 놓는다. 이 중 <다섯 송이 해바라기>는 2차 대전 때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는 세 점만 남아 있다.
고갱의 회고록에 따르면.....
"나의 노란 방에는 해바라기들이 노란색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해바라기들은 노란 테이블 위의 노란 화병에 꽂혀 있었다. 그림의 한 귀퉁이에는 화가의 서명인 '빈센트'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내 방의 노란색 커튼을 통해 들어왔던 노란 해는 방을 황금색으로 가득 채웠다. 아침에 침대에서 깰 때면 나는 이 모든 것에서 정말 좋은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해바라기의 형상이나 색채, 그리고 해를 향한 성질은 반 고흐의 내면적 원형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미묘한 톤의 파란색을 배경으로, 강렬한 변화의 노랑으로 모습을 드러낸 <해바라기>는 반 고흐가 동생에게 말했듯이..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풍부한 변화로 인해 태양에 대한, 또한 생명에 대한 찬가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이처럼 그는 자신의 강렬한 생명력을 해바라기를 통해 본 것이다.
Gauguin - Van gogh painting sunflower / 1888 .12
고흐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또 한가지 일이 생기는데, 해바라기그림에 몰두하고 있던 고흐를 표현한 고갱의 그림 때문이다. 이 그림을 그린 후 '우리의 우정을 기념'하는 작품이라고 말하는데, 고흐의 해바라기와는 달리 시들어버린 해바라기를 그렸고, 풀린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고흐의 어눌한 얼굴 표정의 표현과, 붓의 생김새가 마치 길다란 침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들이다.
또한 고흐는 고갱을 위하여 포즈를 취한 적도 없거니와 9월 이후부터는 해바라기를 그리지 않았고 이 무렵에는 <폴 고갱의 의자>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갱의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놓여 있는 바로 그 의자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구도적으로 볼 때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흐의 위쪽으로 고갱 자신이 그리고 있는 대형 작품이 놓여져 있는데 그 그림에는 해바라기보다 더 밝고 넓은 면적의 노란 색으로 칠하고 있다. 또한 이젤과 고흐의 오른쪽 팔이 삼각형을 이루게 하여 고흐가 즐겨 그리는 'V'자 구성으로 표현하고 있어 그림의 소실점이 고흐 위쪽에 가게 함으로써 고갱의 그림이 고흐를 억누르고 있는 듯이 보여진다. 이렇듯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의도를 고흐가 모를리가 없었을 것이다.
고갱의 그림에 대한 의도를 파악한 고흐가 조용히 물었다.
" 이것이 나 인가요? "
" 그래, 자네 아니면 누구겠는가? "
" 농담이겠지요. 이것은 결코 내가 될 수 없어요! "
그리곤 잠시 후 고흐는 낮게 읖조렸다.
" ...이것이 분명 나라면 제 정신이 아닌 나로군."
그러자 고갱은 "나는 해바라기를 열심히 그리는 자네에게 경의를 표하느라고 그린 것일세."
이 대화는 이 일이 있은 후 14년이 지나고 고갱이 저술한[ '화가의 넋두리' /1951년 출간]에
나타나 있다.
Self-Portrait 1888.12
고갱에게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를 보고서 그가 그 그림에 대항하여 그린 그의 자화상이다. 고갱이 그린 자신의 얼굴표정- 눈이 반쯤 감겨진- 에 대한항변을 하는 듯이 그의 두 눈은 부릅뜨고 입술을 꼭 다문 체 무언가를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해바라기를 상징하는 노란 색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이 또한 시들어 버린 해바라기에 대한 대항이며,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듯이 윗쪽에 세워진 고갱의 그림 속의 노란색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다. 고흐는 평소 초상화를 그릴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눈의 표현이었다. 그의 자화상을 보면 그 눈에 심정, 환경, 생각들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12월 23일 고갱과 예술에 관한 논쟁 끝에 자신의 왼쪽 귀 일부를 잘라내어 “소중히 간직해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를 동봉한 편지를 사창가의 여인 라쉘에게 전해준다. 언젠가 농담삼아 '그러마'고 그녀와 약속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상한 행동에 대한 제보를 받고 이튿날 찾아 온 경찰은 침대 위에서 거의 죽은 듯이 보이는 빈센트를 발견하고, 아를 시립 병원에후송하게 된다. 고흐가 귀를 자른 것은 고갱이 떠난다는 것에 강한 반대를 표시하는 동시에 고갱이 떠남으로써 고흐가 드렌테에서 부터 꿈꾸어 온 '예술 공동체'실현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의 표현이라고 보여진다.
12월 24일 고갱이 이 소식을 테오에게 전하고, 동생 테오는 병원에 있는 빈센트를 보기위해 아를로 급히 달려 온다. 이튿날 고갱은 테오와 함께 파리로 돌아가게된다.
-고흐가 해바라기를 즐겨 그린 이유를 생각하며
2015년 1월 22일 智 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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