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스님 聖地, 극락암을 다녀오다/16차 인드라망 사찰순례후기 ②
演菩提(연보리)추천 0조회 26822.09.23 23:12 큰절 통도사를 나온 순례단은 산내 암자인 극락암을 향해 출발했다. 고려 충혜왕 2년(1332년)에 창건되었다 전해지는 극락암은 현대의 고승이신 경봉(鏡峰) 스님께서 오래도록 주석하셨던 곳이다. 큰스님께서는 극락암 삼소굴에서 출가 20년 만에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보고 오도송을 읊으셨다. 그 후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수많은 승속이 드나들며 수행을 지도받았던 이곳은 경봉스님의 성지로 불린다. 버스로 잠시 이동하자 극락암 주차장이 나온다. 큰 차는 더 이상 들어 갈 수가 없다. 올려다보니 솔숲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잠시지만 포장길을 마다하고 모두 숲 사이로 난 흙길로 접어든다. 나뭇가지는 미동도 않는데 솔잎은 맑은 바람소리를 내고 있다. 저 아래 어디서 세심교란 다리를 본 듯하다. 이곳은 지금 마음이 저절로 씻기는 숲. ![]() 앞서거니 뒷서거니 올라가자니 영락없는 소풍객이다. 장난끼가 동한 평등심님, 뒤를 돌아보며 "오리~"라고 소리치니 뒤따라가던 일행이 자동으로 답한다. "꽥꽥~" ^^* 이후 병아리, 돼지, 하마까지 동원되어 즐거이 오르자니 그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던지 부산의 명륜님도 선창을 해 보신다. 병아리~ 삐약삐약~ ㅎㅎ 명륜님이 내린 결론은 대구사람들은 정말 착하고 말을 잘 듣는다는 거다.^^* 웃으며 걷자니 금세 극락암이다. 극락 영지엔 당연히 홍교가 걸려 있다. 계절따라 나무만 옷을 벗고 있을 뿐이다. 다른 길도 있지만 모두 극락교를 걸어 본다. ![]() 살아생전 경봉스님은 극락암을 찾는 이들에게 자주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느냐?” ![]() 경봉스님의 친필이라는 여여문(여시문이라는 자료도 많음 통도사 산내의 다리들은 모양이 다 비슷한가 보다. 계단이 있고 아치형이며 난간이 없다. 어느 사찰을 가면 법당을 오르는 계단이 유난히 좁고 가파른데 그건 법당에 들기 전 정신을 모으고 자세를 바로 가다듬으라는 뜻에서 일부러 그렇게 만든 계단이란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난간 없는 다리도 일면 그런 의미를 지닐 것 같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물 속으로 풍덩 떨어질테니.. 극락암 현판이 붙은 전각에 들러 부처님을 뵙고 그 옆에 모셔진 경봉큰스님의 진영 앞에 삼배를 올렸다.
비록 사진이지만 두번째 친견이다.![]() "누구든지 활발하게 산 정신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낙엽도 활기를 띠고 하늘에 가득한 바람과 비를 타고 훨훨 나는구나. " 하시며 사바세계를 무대로 멋지게 연극 한 번 펼쳐보라시던 스님의 일대기 [야반 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속의 말씀이 떠오른다. ![]() -극락암에 모셔진 경봉스님 진영
-수세전 -선원인 정수보각 이태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도량 곳곳에 파초가 무성했었다. 하도 인상적이라 극락암을 생각하면 떠오르던 파초잎이다. 극락전 앞에도 수세전과 정수보각 앞마당에도 파초가 있어 푸른 기상을 자랑하더니 오늘은 없다. 다시 생각이 신광에 미친다. 구법일념으로 그가 팔을 잘라 파초잎에 올려 달마대사께 바쳤던 날은 밤새 흰눈이 내렸다고 했는데 이 곳의 파초잎들은 어떻게 된걸까? 선원 스님들께서 다 뜯어 바쳤는지..^^* 이곳이 삼소굴(三笑窟)이다. 경봉스님께서 주석하셨던 곳이다. 여염집 별채처럼 따사롭고 자그마한 공간, 이곳이 큰스님께서 계셨던 곳이라니 좀 더 가까이 보고싶은 생각에 출입금지의 대문 사이를 기웃대 보기도 한다. 어느 분은 글에서 '出入금지'를 거꾸로 읽으면 '지금입출' 되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했지만 우리야 어디 그런 호기를 부릴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원광재 동백나무 아래 모여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든 생명이 동면한듯 메마른 이 한 겨울에 동백 몇 송이가 피어 있다. 언뜻 봐서는 꽃이 피어 있을 것 같지가 않더니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이 추운 날씨에도 애써 꽃을 피운 모습에 눈이 다 시려온다. 삼소굴은 虎溪三笑란 고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호계삼소는 儒-佛-道의 진리가 근본에 있어 하나라는 것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동진의 고승 혜원(慧遠)은 출가한 뒤 여산의 동림정사에 머물며 정진하였는데, 오직 학업에만 몰두하자는 뜻으로 그는 影不出山 跡不出俗(영불출산 적불출속)이라는 글을 걸었는데, 그 뜻이 그림자는 산을 나서지 않고, 발자취는 속세에 들이지 않는다는 말로서, 손님을 배웅할 때는 절 아래 개울인 호계를 넘지않는 것을 철칙으로 정하여 지켰다. 이런 혜원(慧遠)이 유학자(儒學者)인 도연명(陶淵明)과 도교(道敎)의 대가인 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하다가 이야기에 몰두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호계(虎溪)를 넘고 말았다. 한참을 지나친 뒤에야 이를 깨달은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박장대소(拍掌大笑)했다는 일화인데, 즉 세 사람의 生存年代로 미뤄 후대인들이 꾸며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얘기이나, 思想과 宗敎의 차이를 넘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표현할 때 흔히 인용되는 故事 고사다. -백과사전에서 인용- -삼소굴과 원광재 ![]() ![]() 잠시지만 극락의 맛을 봤으니 일부러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몸과 마음은 저절로 기억할 듯 싶다. 다시 극락교를 밟아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 작은 영지에 영축산 높은 봉우리가 모두 비친다고 했던가. 오늘은 살엄음이 살짝 얹혀 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겨자씨 하나에도 수미산이 쏙 들어가는 이치를 아는 불자들에겐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 “대문 밖을 나서면 돌도 많고 물도 많으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도 말고 물에 미끄러져 옷도 버리지 말고 잘들 가라" 평소 경봉큰스님께서 자주 하셨다던 말씀이다. 예..라고 합장하며 돌아서 온다. 구멍이 숭숭 뚫린 저 늙은 감나무 아래에 하얀 감꽃이 톡톡 떨어지는 날, 다시 한 번 와보고 싶다는 세 번째의 원을 세워 본다. 演菩提(연보리)님은 '통도사 비로암 카페의 회원이시며' 통도사 비로암 카페의 카페지기 지월님과 절친도반 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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