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6월 7일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에서 태어났다. 17세에 기장의 장안사로 출가. 취룡 태일(鷲龍泰逸)스님을 은사로, 해령(海嶺)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10년 뒤인 1880년부터 은사를 따라 통도사에 주석하게 된다. 이듬해 1892년 조선조 이후 끊어진 계맥을 이은 당대의 율사인 만하승림(萬下勝林)스님에게 대소승계(大小乘戒)를 수지, 눌암(訥庵)스님 문하에서 대교(大敎)를 마쳤다.
이후 화두를 들고 참선 정진했다. 39세(1892년)에 통도사 승통(僧統)에 취임해 사격(寺格)을 일신하였고, 51세(1904년)에 통도사 총섭(總攝)이 됐다. 1906년 황화각(皇華閣)에 불교전문강원을 설립해 원장 소임을 보면서 10여 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그 가운데, 황화각과 동곡루(同穀樓)를 중수했으며, 1911년 부처님 진신사리탑을 보수할 때 총지휘를 했다.
61세 되던 1914년에는 보광선원(普光禪院) 원장이 되어 납자들을 지도했고, 1927년(정묘년) 음력 12월29일 자시(子時)에 열반했다. 장례는 3일장으로 거행됐다. 제자 경봉은 은사의 열반을 다음의 시로 기렸다.
劫前有樹本無影(겁전유수본무영) 공겁전의 본래 그림자 없는 나무가
偶得春風現世眞(우득춘풍현세진) 우연히 봄바람 만나 세상에 나왔네
莫問吾師歸去處(막문오사귀거처) 스승의 돌아간 곳 묻지 마라
靈光空寂是靈眞(영광공적시영진) 신령한 광명 공적한 것이 이 영진일세
또한, 한암스님은 경봉스님의 청으로 영찬(影讚)을 지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聖海大和尙影讚(성해대화상영찬)
勤護三寶(근호삼보) 부지런히 삼보 수호하기를
一片赤心(일편적심) 일편단심 이었네
參尋祖意(참심조의) 조사의 뜻 참구하여
透脫古今(투탈고금) 고금을 꿰뚫었네
來耶去耶(내야거야) 오는 것이냐, 가는 것이냐
明月胸襟(명월흉금) 밝은 달 흉금일세
靈鷲山屹(영축산흘) 영축산 높이 솟고
洛東江深(낙동강심) 낙동강 깊으노라
세수 74세. 법납 58세. 碑(비)는 통도사 부도전에 봉안돼 있고, 문하에 구하천보(九河天輔, 1872~1965). 재하법성(齋河法晟). 경봉정석(鏡峰靖錫, 1892~1982). 경하달윤(鏡河達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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