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서 경영수업을 받다
<①편에서 계속>
자, 이제 이건희의 공부의 계절은 끝난다. 현업이 기다리고 있다. 68년 12월, 그는 비로소 공식적으로 첫 직장 중앙일보, 동양방송에 입사한다. 대학원에서 그의 부전공이 매스컴학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직책은 동양방송, 중앙일보의 이사. 본격적으로 부친인 이병철 회장과 장인인 홍진기 동양매스컴 회장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부친이 주재하는 모든 경영회의에 말석에 껴서 참석하고, 아버지의 골프 라운딩에도 따라 다니면서 부친과 라운딩하는 인사들이 나누는 대화를 경청한다. 이 실전 수업은 부친이 타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나 특이한 것은 74년 그는 동양방송 이사의 자격으로 부친인 이병철 회장에게 반도체 산업에 진출할 것을 건의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병철 회장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반도체 산업은 1개 라인을 건설하는데 1조5000억원(2000년 기준)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만큼 그에 대한 리스크가 워낙 크고, 공정과정이 500여과정이 될 정도로 복잡한데도 단 한군데도 불량이 없어야 하며, 1평방 미터 안에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한 개의 먼지도 존재하지 않는 초청정 기술이 필요한 사업이었다. 말하자면 반도체 사업은 삼성이 그때까지 해왔던 기존의 사업과는 그 개념부터 다른 사업이라고 이병철은 판단했던 것이다.
자신의 건의가 무산되자 그후 이건희 이사는 사재 4억원을 털어 부천의 한국반도체라는 작은 회사를 스스로 인수한다. 그후 불과 10년이 채 안된 83년에 삼성은 본격적으로 반도체 개발에 나서게 되고, 삼성의 반도체 산업은 한국을 먹여살리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업종으로 발전한다.
자, 이제 이건희의 공부의 계절은 끝난다. 현업이 기다리고 있다. 68년 12월, 그는 비로소 공식적으로 첫 직장 중앙일보, 동양방송에 입사한다. 대학원에서 그의 부전공이 매스컴학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직책은 동양방송, 중앙일보의 이사. 본격적으로 부친인 이병철 회장과 장인인 홍진기 동양매스컴 회장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부친이 주재하는 모든 경영회의에 말석에 껴서 참석하고, 아버지의 골프 라운딩에도 따라 다니면서 부친과 라운딩하는 인사들이 나누는 대화를 경청한다. 이 실전 수업은 부친이 타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나 특이한 것은 74년 그는 동양방송 이사의 자격으로 부친인 이병철 회장에게 반도체 산업에 진출할 것을 건의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병철 회장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반도체 산업은 1개 라인을 건설하는데 1조5000억원(2000년 기준)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만큼 그에 대한 리스크가 워낙 크고, 공정과정이 500여과정이 될 정도로 복잡한데도 단 한군데도 불량이 없어야 하며, 1평방 미터 안에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한 개의 먼지도 존재하지 않는 초청정 기술이 필요한 사업이었다. 말하자면 반도체 사업은 삼성이 그때까지 해왔던 기존의 사업과는 그 개념부터 다른 사업이라고 이병철은 판단했던 것이다.
자신의 건의가 무산되자 그후 이건희 이사는 사재 4억원을 털어 부천의 한국반도체라는 작은 회사를 스스로 인수한다. 그후 불과 10년이 채 안된 83년에 삼성은 본격적으로 반도체 개발에 나서게 되고, 삼성의 반도체 산업은 한국을 먹여살리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업종으로 발전한다.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에서 두번째). /조선일보 DB
이건희가 삼성의 후계자로 공식거명된 것은 77년8월 이병철 회장이 <닛케이(日經) 비지니스>와 가진 인터뷰가 최초이다. 이병철 회장은 그 인터뷰에서 <3남 승계>를 최초로 밝히고 공론(公論)화했다. 이로써 삼성의 후계자가 3남 이건희 임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본격적인 차기 계승자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78년, 그가 삼성의 부회장이 되어 첫 출근하던 날, 이병철 회장은 그를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붓을 들어 직접 경청(傾聽)이라는 휘호를 해주었다.
경청. 즉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야말로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로서의 금과옥조임을 강조한 것이다. <경청>이라는 부친의 가르침때문인지 이건희는 사장단 회의 때나 보고를 받을 때 대부분 듣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주로 듣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지금도 그의 좌우명 중의 하나가 <좋은 경청자가 되자>이다. 하지만 한 번 말을 시작하면 3-4시간은 기본이고, 10시간을 얘기할 때도 있다. 단 그가 말을 꺼냈을 때는 철저한 사전 검증을 거친 경우이다. 비서들이나 구조조정본부 등에 조사를 시키고 그 보고서를 검토한 후 다시 그 자신이 직접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의견을 들은 후 지시를 내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최소한 여섯 번 이상 ‘왜?’냐고 묻는다. 그의 여섯 번의 <why>는 ‘왜 그 사업을, 왜 그 곳에서, 왜 그 시기에, 왜 그사람으로 하여금, 왜 그만한 돈을 들이고, 어떤 목적으로 하느냐’ 하는 것 등을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이건희는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조사시키고 분석한 후 자신이 답을 스스로 찾고나서 열번 정도 더 생각한 후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한다. 그만큼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는 말이다. 그는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걷는다는 그의 선친보다도 한술 더 뜬다. 이런 그의 사전검증은 이병철 회장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건희는 78년부터 이병철 회장이 서거한 87년까지 햇수로 약 10년간 그러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출처 : 통도사 비로암
글쓴이 : 智 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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