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일 외에 무엇을 더 하랴
포항 비학산 자락에 사는 선화가 허허당 스님

허허당 스님은 30년째 선화(禪畵)를 그려왔다. 산방에 칩거하며, 오직 그리는 일에 몰입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인생을 즐겁게 놀기 위해서다. 작품 한 점이 1억 원에 팔리기도 했다.
그는 깊은 산골 개울가에 홀로 산다. 포항 죽장면 비학산 자락 산방(山房)에 은거했다. 승려 신분이기에 눌러앉은 그 자리가 바로 법당이겠으나 절집의 치레가 전혀 없다.
몰려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어디에 소속된 바가 없고, 바람이나 물소리 새소리의 방문을 환영할망정 오겠다는 사람을 반색하는 일이 없다. 내동 독거(獨居)를 추구하는 취향이라서 찾아드는 신도조차 있을 리 만무하다. 말하자면, 없는 듯 있다. 쥐 죽은 듯 고요하게 산다. 이런 삶에, 그는 설렌다.
비고 또 빈 집, 허허당(虛虛堂, 58)이라는 법명은 그래서 아귀가 맞다. 고스란히 비었으니 허허 너털웃음이 적격이겠으나, 이 스님의 낯빛엔 적막이 감돈다. 저만치 허심으로 홀로 벗은 채 어엿한 겨울나무를 닮았다.
그렇다고 주야간에 넋을 놓고 우두커니 앞산을 관람하는 걸로 시간을 죽이는 식의 도락은 그의 방식이 아니다. 그의 손엔 늘 붓이 붙어있다. 선화(禪畵), 또는 불화(佛畵)를 무시로 그려댄다. 작업시간이 축날 걸 저어해서 밥은 하루 한 끼만 먹는다. 피카소처럼 죽어라고 그려대는 것인데, 그린다는 표현은 그의 구미에 맞지 않다. 논다! 이렇게 되는 거다. 허허당의 진정한 스승은 부처도 공자도 장자도 아니고 ‘놀자’다.

허허당 스님의 작품.
그가 중이 된 건 열아홉 나이 때였다지. 인생이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물건이란 말이냐, 일찍이 이런 당돌한 궁구가 있었단다. 해서, 속연(俗緣)을 거두고 해인사에서 머리를 밀었다. 불가의 통신에 따르면, 한 사람의 출가는 누대에 걸쳐 집안에 복을 안기는 일이다. 그러나 뒤에 남은 피붙이들의 허탈을 무엇으로 보상하나. 게다가 그는 뜬금없는 가출로 출가를 도모했다. 삭발한 뒤에서야 양친을 뵙고 산문에 든 경위를 자백했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오열했고, 아버지는 묵묵히 귀 기울였다 한다.
“제가 집안의 막내였어요. 그러니 얼마나 예뻤을까? 상심이 컸겠지만 아버지는 그대로 받아들이셨어요. 시장에 데리고 가 팬티 두 장, 양말 두 켤레를 사주시며 너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라, 하십디다.
그렇게 작별하고 돌아섰는데, 제가 살짝 뒤돌아봤더니 아버지께선 돌아보지 않더라고. 아비가 돌아보면 저 녀석 마음이 오죽하랴, 그런 배려였죠.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버지가 큰 스승이었소.”
“그 뒤로 부모님을 다시는 만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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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워서 그린 그림이 아니다. 피땀을 쏟아가며 혼자 익혔다. 이젠 내면에서 무르익어 저절로 그림이 터져 나온다. 2 2013년 여름에 펴낸 그림 잠언집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한다”이다. |
“어머니가 어느 날 해인사를 찾아오셨어요. 그러나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보살님이라 부르며 내쫓다시피 박대했습니다. 깨달음 공부를 치열하게 했던 때라서, 오직 그 하나에 매달린 때라서 펑펑 울며 산을 내려가는 어머니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어요.
지금 같으면 꼭 안아드렸겠지만, 당시엔 칼 같은 법도를 지켜야 하는 수행승의 본분이 우선이라 배웠어요. 그 시절 해인사 방장이었던 성철 스님을 수발했으니 규율도 삼엄했고….”
“스님의 눈에 비친 성철은 어떤 분이었을까?”
“칼 같은 분, 서릿발 같은 어른이었죠. 수행자는 선인장과 닮았습니다. 끝없는 사막에 선인장 하나가 붉은 꽃을 피워 사막 전체를 붉게 물들여요. 수행자는 그렇게 혼자 싸늘하고 고독하게 머뭅니다. 성철 스님에겐 그런 면모가 있었어요.”
“이성을 쫓아다닌다거나 객기나 낭만에 젖을 열아홉 나이에 출가를 하셨어요. 조숙일까? 발심(發心)의 계기가 궁금해요.”
“열아홉 나이가 절대 어리진 않습니다. 저에겐 어려서부터 묘하게도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많았어요. 나름대로 아주 절박했죠. 니체의 책에서도 영향을 받았어요.
가령 이런 문장, ‘벗들이여! 그대가 나를 배반한다면 나는 비로소 그대의 벗이 되겠노라!’ 이게 무슨 뜻일까, 화두처럼 가슴에 콱 박히더라고. 그러다가 불경과 부처의 일대기를 읽었는데, 부처라는 사람 참 멋지다, 부처가 확철대오(廓徹大悟) 뒤 바라본 인생은 어떤 것일까, 부처처럼 살고 싶다, 그것으로 존재의 의문을 풀어보자, 그랬어요. 바로 해인사로 달려갔고….”

19세 젊은 나이에 출가해 어언 예순을 바라보는 허허당. 안으로 숙성된 격(格)이 느껴진다.
이미 다섯 살에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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