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암자와 절집 사람들

통도사 방장(원명지종)스님의 법어

동자승12 2016. 3. 26. 08:43

동안거 해제법어

일념의 마음이 그대로 이것이거늘 어느 곳에서 따로 찾으로
道心堅固(도심견고) 하야 須要見性(수요견성) 하라 疑着話頭(의착화두) 호대 如咬生鐵(여교생철) 이어다


대자비 천안은 청정해 티가 없음이여!
특별히 간절한 노파심으로 꽃을 드셨네.
마갈의 영산회상에서는 가섭이 미소 지었다는데
지금은 누가 있어 선타객이 되겠는가?


부처님께서 육년 수행정진을 통해 한 가지를 깨달으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선지식들에게 묻고 배워도 풀리지 않는 한 가닥 의심은 해결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동안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고 드디어 생사를 건 정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샛별을 보고 생사근본의 이치를 깨우치셨으니 그날이 납월 팔일입니다.


이 날은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무명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 부처님의 해제 날입니다.


이 자리의 수행자들에게는 정월 보름 오늘이 바로 해제 날입니다.
각자가 화두 하나를 굳게 들고 망상의 유혹과 씨름을 했습니다.
근원도 없는 번민은 까마득한 언덕도 되었다가 깊은 수렁도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땐 잠깐의 희열을 느끼게 하다가 순식간에 감당하기 어려운 상념의 골짜기로 몰아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겨울의 모진 추위를 맨 몸으로 견뎌 낸 소나무처럼 그 절개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오직 자신들만이 알 것입니다.
결판을 낸 사람은 청량산을 먹은 것처럼 가슴속이 시원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시가 걸린 것 같을 것입니다.


그 옛 날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연꽃을 드심에 가섭이 미소 지었다고 하지만 이것도 역시 다른 이의 분상일 뿐입니다..


반드시 자신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스스로 머리를 끄덕일 때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는 과거를 준비한 선비가 장원급제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행자에겐 견성이 장원급제요 해제입니다.
오늘 대중은 스스로 머리를 끄덕이는 해제 날입니까?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면 각오를 다져야 할 것입니다.
수행자가 용맹심을 내어 온 몸을 불구덩이에 던지려 한다면 먼저 높고 험한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화두를 드는 것은 인내하며 정상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줄이요 자신의 모든 것이라는 마음으로 올라야 합니다.
망설이거나 멈춰서면 번민의 두려움은 더욱 거센 불길이 되어 치솟아 오릅니다.
끝까지 올라가서 일념의 화두가 견고한 갑옷이라는 믿음이 섰다면 서슴없이 뛰어내려야 합니다.


소요자재는 스스로 경험하는 것이지 누구에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총명함을 믿고 이치만을 따져서 이루어지는 공부가 아닙니다.
정진은 중생이라는 깊고 깊은 우물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 끈입니다.
끝없는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수행자가 정진의 끈을 굳세게 하지 못하고서는 헛된 말장난에 불과 합니다.


시비분별을 내려놓고 한 걸음씩 다져 나가야 합니다.
어제까지는 무명의 눈으로 저 허공을 바라보며 공허를 느꼈다면 오늘은 천진의 텅 빈 눈으로 모든 것을 품어 안는 광활함을 보는 날이어야 할 것입니다.

 

學道無多字(학도무자다) 하니 當人決定心(당인결정심) 이라 忽然都放下(홀연도방하) 하면 物物是知音(물물시지음) 이로다

시방의 대중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모두가 무위의 이치를 파고드네.
이 자리는 부처를 가려내는 곳이니
마음을 비워 급제해 돌아갈 지어다.